또 다른 민주주의
장동훈 신부
얼마 전 보노짓 후세인이라는 인도청년이 버스에서 한 한국사내와 실랑이를 벌인 일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사내는 후세인을 향해 "더러워, 너 더러워 이 개**야", "너 어디서 왔어 이 냄새나는 **야!"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실랑이 끝에 후세인과 함께 있던 그의 한국인 동료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했다. 욕설을 퍼부은 사내는 합의를 제의했지만 후세인과 그의 동료는 그를 모욕 혐의로 고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법원에서 후세인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왔다.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전해 들으면서 그 저급하고 천박한 사내가 우리네의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속내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도대체 우리사회는 얼마나 더 성숙해야할까라는 한숨 나는 생각과 함께 살인적이라 할 수 있는 출입국 사무소의 단속과 고용주들의 구타, 임금체불, 차별과 멸시에 여전히 숨죽여 울고 있는 가무잡잡한 외국인 친구들의 얼굴이 생각나 슬퍼졌다. 사대주의의 잔재와 순혈주의로부터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우리는 우리가 사는 터전을 함께 지탱하는 이 소중한 이웃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는 저급한 차별과 적대감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우리나라 대통령은 세계 20개국 정상회의(summit 20)에서 돌아와 다음번 정상회의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내용인즉슨 이제 우리도 세계를 향해 방귀 좀 낄 수 있는 위치가 되었으니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라, 일방적으로 국제 질서에 따라가는 입장이 아니라 이제 주체적으로 국제 질서를 주도할 위치가 되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한날이다.
잠시 시계를 뒤로 돌려보자. 1987년은 한국 역사에서 길이 기억될 뜨거운 한 해였다. 여름의 항쟁으로 노동자,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들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복귀의 초석을 놓았고 동시에 그 즈음 개발독재의 저임금 노동력에 의한 국가 경쟁력이라는 원칙을 헐어버리고 후진성의 옛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 해였다. 하지만 그 때, 세인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한국을 향해 최초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때로부터 2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오늘을 바라보자. 하지만 세계정상회의의 참석하고 세계 속의 중심 한국, 국제 리더십 따위를 이야기하는 오늘까지도 우리의 터전에서 땀 흘려 일하는 외국인 친구들의 시계는 22년 전 그대로이다. 아니, 그들의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들의 시간이 멈춘 것이다. 실제적 다문화 사회를 이미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순혈주의로 무장해 진정한 세계인으로 살기에는 몸이 너무 둔해져버린 우리의 시간은 여전히 22년 전과 같이 구태의연하다.
많은 이들이 이제 어느 정도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말하지만 (요즘 세태로는 그것마저도 다시 무너진 듯하지만) 진정 세계를 향한 세계 속의 한국인이려면 우리는 이제라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이루어야할 것이다. 이 또 다른 민주주의는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 사회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들을 "그들"이 아닌 우리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하는 우리들 가슴속의 민주주의일 것이다. 이 "또 다른 민주주의"가 우리들 속에 바로 세워지는 날 비로소 우리는 세계20개국 정상회의를 끝내고 돌아와 자랑스럽게 세계 속의 한국을 이야기하는 대통령을 더 이상 지금처럼 씁쓸하고 거북하게 바라보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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