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일기(칼럼)

뭇 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이는 법 (노동자 인성센터 2009 12)

바깥 주인장 2010. 1. 31. 20:37

뭇 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이는 법

 

장동훈 신부

우리나라 삼국사기에는 용모가 빼어나 가는 곳 마다 납치당하는 수로부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번은 용왕에게 수로부인이 붙들려가고 나서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노인이 나타나 "뭇 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이는 법"이라고 일러줬고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이야기가 바로 바다의 노래, 해가(海歌)라고 합니다. 노래를 지어 사람들이 간절하게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노래 덕에 무사히 수로부인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참 멋진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입, 그 입이 담아내는 소리는 음성기호를 넘어 그 입의 주인의 인격과 마음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간절함을 담아냅니다. 가끔 "입이 방정이야", "말이 씨가 된다"는 입놀림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떠올려본다면 사람의 언어는 단순히 소통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언어는 본디 기도의 속성을 지닌 "주술성"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이렇게 간절함, 그리고 기원, 희망 모두 입을 통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옛 교부(敎父)들이 왜 입으로 드리는 염경기도를 그리도 강조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우리가 되내이는 "주님의 기도"도 그 뜻을 헤아려본다면 우린 엄청난 것을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이 얼마나 멋지고 엄청난 일입니까. 어쩌면 이 한 구절을 위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선배들은 그렇게도 열심히 싸우고 기도하고 희망했는지 모릅니다. 가끔은 기쁘게, 구성지게, 음울하게, 애틋하게 그 한 구절을 수도 없이 노래로 부른 것이 우리 인천교구의 노동사목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래도 시대를 타고나듯이 함께 노래해야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죽은 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평의 일꾼들은 새로운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있습니다. 그 바다의 노래, '해가'의 새로운 이름은 "노동자 인성센터"입니다. 수로부인을 구하려던 옛사람들의 애틋함처럼 다시금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절절함으로 새롭게 노래를 부른지 벌써 일 년입니다. 아직은 한 살배기, 옹알이를 하듯 조심스럽고 부끄럽고 호기심 가득한 노동자 인성센터의 기도가 차츰 자라고 건강해지고 종국에는 "수로부인"을 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영락없는 부끄러운 만년 소녀, 하지만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베테랑의 숙련미로 어느새 인성센터 확 잡아버리신 우리 노은숙 수녀님, 그리고 얇디얇아 불면 훅 날아갈 것 같지만 섬뜩 섬뜩 비치는 눈빛의 세상을 향한 날선 예리함의 소유자 '승연엄마' 김은숙 사무국장, 너무 빼어난 용모에 중신하겠다며 나선 사람 바보 만드시는 '아줌마' 박혜연 선생님, 배가 불러 불안 불안해도 늘 미소로 갈 곳 못 갈 곳 다 다니시는 당찬 '아줌마' 이로사 선생님. 그리고 들락날락 이곳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이들이 새롭게 지어나갈 노동자 인성센터의 노래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뭇 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이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노래를 지어 부르는 인성센터가 세상의 차디찬 마음도, 불의도, 상처도 모두 녹이는 가공할 위력의 기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일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