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일기(칼럼)

흔들리는 우리에게 (부천노동사목 2009 12)

바깥 주인장 2010. 1. 31. 20:45

흔들리는 "우리"에게

장동훈 신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서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전문

이 글을 쓰는 오늘, 전 선배신부의 본당 입당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6년, 정말 오랜 시간동안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본당을 꾸렸고 이집 저집 전전하면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던 이 선배신부의 오늘 얼굴은 참 화사했습니다. 전임 신부가 본당에 왔지만 이런 저런 여의치 않은 일로 떠나고 상처만 가득 받은 본당신자들의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벽돌과 돈만 있으면 짓는 보이는 성전보다 더 어려웠다고 합니다. 선배의 화사한 얼굴 뒤에는 "다큐"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웃던 얼굴이었던 선배가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순간 기어코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는 "다큐"를 지켜보면서 위에 적은 도종환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자연을 노래한 도종환은 사람도 그리고 사람의 물리적 공간인 시간도 모두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았나 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다큐" 없이 익어가는 삶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화사함 뒤에 "다큐"를 품고 있던 선배는 제대 앞 가운데 자리를 마다하고 이층 맨 구석, 자리가 좁아 서서 미사를 드리던 본당 신자들에게 직접 성체를 영해주었습니다. 아! 그 눈물어린 "다큐"가 사람을 참 겸손하게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세심함도 얻게 해준 것이구나. 참 많은 생각을 하게했던 미사였습니다.

2009년 우리도 너무나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비와 바람에 젖고 또 젖었습니다. 우리를 흔들어 대던 비와 바람은 넓게는 전방위적으로 밀어치는 돈에 미친 세상의 역습이고 재개발의 광풍이고 용산의 억울한 죽음이고, 말도 안 되는 이 모든 세상을 무심히 바라보는 작은이들의 침묵입니다. 소소하게는 이 비와 바람은 일회용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우리 일자리이고 이제까지 함께한 웃음과 울음이 아무 것도 아닌 양 내쳐버리는 실직이라는 이름입니다. 누구는 그 비와 바람이 아픈 몸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왜 나만 이래"라는 억울함이고 고개 숙인 절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다큐"없는 화사함은 없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비와 바람은 우리가 버티고 이겨낼 것이지 내 삶의 전체이고 본질 일 수 없다는 사실을. 2009년 너무 정신없고 힘들었습니다. 비와 바람, 예년에 비해 더 매서웠고 거칠었습니다. 2010년 그 비와 바람은 더 거세질 수 있습니다. 허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다큐"없는 미소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2009년 비와 바람에 젖고 흔들린 당신, 곧게 곧게 줄기를 세우고 있다고 서로 격려하고 걸어갑시다. 뚜벅 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