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6월 24일 명동 꼬스트홀에서 열린 "복음의 기쁨과 한국교회 시대의 징표" 심포지엄의 논평글입니다. 논평글을 블로그에 올리기는 처음이지만 발제문을 작성하며 떠오른 몇가지 생각들을 나누고싶은 마음에 이곳에 옮겨놓습니다.
제 3발제 "한국 사회 '시대의 징표'와 사목적 응답"에 대한 논평
쇄신의 경로, 불편함
장동훈
발제문의 부제에서 드러나듯 발제자가 파악한 한국교회의 가장 큰 시대의 징표는 양극화입니다. 대강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이러합니다. 역사적 실재로서의 교회가 지난 세기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파고 앞에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였고 조우했는지를 파악하며 '직접적 사회선교'로 특징지어진 한국교회의 이른바 '가톨릭사회운동'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무산계급이 주류를 이루었던 교회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스스로 '중상층'으로 변모하는 탈계급화를 거듭하며 현실과 괴리된 신심의 확대와 구원이 개인적 영역으로 축소 왜곡되는 사회적 영성의 퇴조로 귀착되었다 파악합니다. 이러한 양극화 위기는 대중들로 하여금 불의한 현실에 대한 개혁과 개선의 의지마저 상실한 채 스스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순응, 곧 '노예의 길'을 강요했고, 이 위기 속 양적으로 성장한 교회 역시 가난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다 진단합니다. 더불어 교회의 탈계급화의 여파는 평신도가 중상층화 된 것보다 교육이나 의료 사업 등, 과거 직접적 사회선교의 몫을 감당했던 수단 자체가 위계적 교계제도의 폐쇄성과 더불어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자기보전을 위한 끊임없는 성장만을 추구하며 스스로 자본가로 전락하고 마는 폐해를 가져왔다 진단합니다. 발제자는 이러한 진단에 대한 나름의 처방과 대안으로 과거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직접적 사회선교의 회복을 제안하며 이를 통해 개인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구원관이 공동체적으로 변모하고 '교세'라는 영적 세속성을 극복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한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발제문의 교회 안팎에 대한 날카로운 사회학적 진단에 적극 동의합니다. 양극화의 위기는 '복음의 기쁨'과 궤를 같이하는 발제자의 진단처럼 교회가 가장 심각하게 바라봐야할 시대의 징표이며 거듭 강조한 탈계급화로 인한 영적 세속화의 근본 원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진단에 비해 그에 대한 대안은 다소 추상적이며, 미처 실제적이고 교회적인 담론으로 열매 맺지 못한 당위적인 원론의 반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사회학적 대안은 차치하고서라도, 양극화를 '무관심의 세계화'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진단과 처방은 물론 사회학적 분석을 사회적 영성으로 단박에 담아내는 현 교황의 '육화'에 대한 탁월한 감각처럼 사회학적 영역을 신학적이며 영성적인 영역으로 묶어내는 '연결고리'는 다소 부족해보입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제게 허락된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다만 시대의 징표에 대한 사목적 응답으로 발제자가 제시한 주제들에 대한 해설의 첨언으로 제 역할을 마칠까 합니다.
이중의 운동
교회는 이중의 운동을 합니다. 과거와 미래, 위와 아래, 안과 밖이 서로 조우하고 이 이중의 운동 경로를 통해 거듭납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세상을 용기 있게 대면하기 위해 복음이라는 원기억(元記憶)의 샘물을 길어 다시금 자신의 길을 전망할 수 있었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처럼 기억이 미래를 머금고 과거가 내일을 전망하게 합니다. 고래의 삶이 내일의 삶을 약속합니다. 교회는 그렇게 자신의 발원지로 내려가 혼탁해진 몸을 씻어 걸어갈 길을 가늠했습니다. 요한 23세 자신의 입으로도 인정하듯 다분히 '즉흥적'이었던 위로부터 시작된 개혁의 바람은 거수기(擧手機) 정도로 자신의 역할을 제한하던 교부들로 하여금 서서히 공의회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의 자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게 위와 아래, 상층과 하층이 끊임없이 순환하며 결국 교회 개혁의 지도(地圖)가 완성됩니다.
발제자가 신자 대중의 중상층화로 가난에 대한 감각이 상실되었고 가난한 이가 없는, 아니 오지 않는 교회에 대한 '근본적 해결방법'으로 제시한 '직접적 사회 선교'의 회복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러한 '사목적 응답'이 기술적이고 사회학적 처방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며 또 그것이 결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근본적인' 것은 고안과 기획으로 이루어지는 방법론의 마련이 아니라 삶의 방식의 변화, 곧 가치관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라면 결국 교회는 발제자의 전망처럼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는 되어도 가난한 교회는 결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직접적 사회 선교 방법론의 회복이 참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는 가난이 여전히 교회 밖의 대상이 아닌 교회 자신의 '유일한 삶의 형태'가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전히 객체화되고 대상화된 가난은, 가난을 대면하며 오히려 양적 성장을 거듭한 (정의구현사제단의 사회적 비판과 참여 역시 결국 교세확장이라는 양적 성장에 일조했다는 발제자의 인식처럼) 교회의 시혜적이며 미봉적인 사회사업의 아이러니를 반복할 소지가 큽니다.
2013년 봄부터 첫눈이 내리는 초겨울까지 22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봉헌되었습니다.(대한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분향소 앞 미사, 2013년 4월 8일~11월 28일) 대중은 물론 언론조차 외면한 이름 없는 해고 노동자들의 넋을 기렸고 동료를 잃은 상심한 마음들을 위로했습니다. 찌는 더위나 몸을 가누기 힘든 태풍에도, 분향소를 지키려는 이들과 빼앗으려는 이들의 악다구니 속에서도, 어김없이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특정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이렇게 장시간 기도가 끊이지 않은 것은 유사 이래 처음 있던 일입니다. 입소문으로 신자들이 찾아왔고 죽음과 절망으로 서걱대는 입을 굳게 닫아버린 노동자들의 말문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앞을 다투듯 이 세상과 이별하던 죽음이 24이라는 숫자에서 기적처럼 멈추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사로 무엇이 달라졌는가. 복직은 고사하고 노동법에 한없이 무지하고 정리해고, 부당해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 교회 내 사업장의 노동현실을 외면하고 생면부지의 노동자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며 가식적인가." 백번 옳은 비판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모순'을 유발하고 '불편'을 가중하는 이중의 운동을 신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밖으로부터 유입된 불편함이 교회 안을 모순에 봉착하게하고 스스로 질문을 제기하게 하는 이 양방향의 운동이 끊임없이 권장되고 추동되어야만 합니다. 불편함이 곧 정화의 과정이고 쇄신의 경로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복음화 되도록 해야 한다"(복음의 기쁨 198항)는 정식이 비로소 의미로 전달되는 대목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가 왜 사회학의 범주 이전에 신학의 범주에 속하는지를 이해하는 순간입니다. 발제자가 언급한 가난한 이들과의 '직접적 접촉'은 가난한 이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로라도 남아야한다는 당위의 자구책이 아니라 스스로 가난한 교회가 되는 유일한 경로입니다.
교회는 역사적 실재로서 태생적으로 한 시대의 수인이자 거울이지만, 이 양방향의 쉼 없는 운동을 통해 자신을 쇄신하고 가난하게 만들며 비로소 영감을 주는 존재, 곧 자신에 갇힌 존재가 아닌 선포하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밖은 안을 성찰케 하고 안은 밖을 비추게 됩니다. 여기서 한국사회의 위기는 이를 주시하는 교회에게는 내일을 이정할 시대의 징표인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적 해결방법'은 사회 참여가 다름 아닌 신앙고백의 차원으로 수용되도록 이 이중의 운동 과정 중 찾아지는 '연결고리'에 천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구름 속 어딘가에 존재할 하느님이 나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묻던 도로테 쉘레(Dorothee Sölle, 1929-2003)의 반론처럼 믿는 이의 고백은 어딘가 있을 초월자에 대한 존재론적 인정이 아니라 내 삶에 끊임없이 간여하고 상관하는 하느님에 대한 실존의 고백이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각론에 충실하라
얼마 전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9년간 이어진 시골 마을의 질긴 싸움이 폭력으로 뜯겨져 나갔습니다.(밀양 송전탑 건설 저지 농성천막에 대한 행정대집행, 2014년 6월 11일) 힘없는 촌로들의 질긴 싸움이 남긴 의미를 되짚자면 무수한 수식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이런 현장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생경한 장면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남은 밀양 송전탑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4개의 움막 중 세 개가 철거되는 도중 저항 과정에서 13명이 응급실로 후송되었고 그 중 7명이 수녀들이었습니다. 반절이 넘는 숫자입니다.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진 철거로 도합 22명이 부상당했고 혼절과 골절 등 부상당한 수녀들의 숫자는 어느새 아홉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날 밀려들어오는 집행관과 경찰병력에 온몸으로 주민들을 감싸고 마지막을 같이했던 수녀는 어림잡아 70명가량입니다. 말 그대로 생경한 이야기입니다.
무엇 때문에 수녀들이 저 자리에 있었는지 묻게 됩니다. 아마도 그것은 복음의 기쁨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한마디, '밖으로 나가는 교회', 곧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렵혀진 교회'(복음의 기쁨 49항)에 순명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교회 구성원 중 말씀의 수용능력이 가장 탁월한 계층이 다름 아닌 수도자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입니다. 설령 교황의 '밖으로 나가는 교회'가 '우의적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를 받아들인 이들이 현장에서 느꼈을 교회는 '다치고 상처 받는 교회'의 '실재'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두 가지라 생각됩니다. 하나는 '언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말씀에 대한 순명'입니다.
1) 익히 알려진 대로 근래 숱하게 회자되는 교황의 말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복음의 예수가 그런 삶을 살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힘주어 강조한 내용입니다. 문제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교황의 말이 지닌 폭발성입니다. 다시 말해 '육화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황의 이 탁월한 언어 감각은 다름 아닌 현장에서 습득된 능력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합니다. 때문에 그 말은 담대하고 생생하며 웅변적이며 불온합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따라서 발제자가 강조한 '근본주의에서 공동체 구원으로' 옮아가는 길, '영적 각성의 육화'는 사회교리의 대대적인 보급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있는 현장, 곧 '각론'에 충실할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언어능력을 촉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회교리가 가톨릭 교리의 '부록'쯤이 아닌 '신앙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각론에 충실한 '언어', 현장의 언어, 곧 '복음의 언어'로 풀이되어야합니다. 복음만큼 생생하고 구체적이며 각론에 충실한 언어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충실성이 복음과 같은 아득한 옛말을 오늘의 말로 재현하고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밀양의 수녀들처럼 현장에 달려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서있는 수녀들이, 곧 이 생경함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각론에 충실한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왜'라 질문하고 갈등하고 불편할 때 복음은 말씀의 수용자 안에서 생기 있게 일을 하는 법입니다.
2) 복음의 순명은 힘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설복이고 항복에 가깝습니다.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진, '구체'에서 건진 복음의 말씀은 더 이상 '이해'가 아니라 '순명'할 정언일 뿐입니다. 이제 복음이 말씀을 수용하는 사람에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건네는' 형국이 됩니다. 이 반전 역시 각론에 충실할 때 가능합니다. 구체적 체험은 에둘러감 없는 말씀을 에누리 없이 수용하게 합니다. 때문에 래디컬 합니다. 누구보다도 각론에 충실했던 교황은 단도직입적으로 복음의 말씀이 결코 우의나 은유가 아니라 말합니다. 이 선명함은 가난을 보고 만질 때 명령하기 시작한 복음 말씀에 대한 확신에서 옵니다. "이 메시지는(복음의 요구) 매우 분명하고 직접적이며, 아주 단순 명료하여, 교회는 이를 상대적으로 해석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본문들에 대한 교회의 성찰은 그 힘을 줄이거나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용기와 열정을 가지고 그 권고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합니다. 왜 그토록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듭니까? 개념적인 도구는 설명하고자 하는 실재에 더 가까워지게 하려는 것이지 우리를 그 실재에서 더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형제애로, 겸손하고 너그러운 봉사로, 정의로, 가난한 이를 향한 자비로 그토록 힘차게 초대하는 성경의 권고들을 설명할 때에 그러합니다. (...) 왜 그토록 분명한 것을 구름으로 가립니까."(복음의 기쁨 194항)
인간 역사와 맞닿아있는 하느님의 역사를 이해하고 사회교리가 신앙고백으로 육화하는 길은 각론에 충실할 때 스스로 말을 건네는 복음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현장'은 눈을 맑게 하고 말씀을 선명하게 합니다. 옛 성인들이 결코 식자이거나 선하지 않은 가난한 이들을 일컬어 스승이고 예수님이라고 고백한 연유입니다. 그들이 배운 것은 가난한 이들의 지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접촉하는 중에 더욱 명료해진 복음의 진리였던 것입니다. 이제 남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한 순명입니다. 따라서 발제자가 강조하는 개인주의 신앙관을 벗어나 공동체적 구원관을 회복하는 길은 "1차적인 사회복지를 넘어 연대성을 선도하고 보여줌으로써 사회에 커다란 복음적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각론에 충실한 언어, 복음의 언어로 현실에 뿌리내린 신앙을 설명할 '연결고리'와 같은 이들의 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발제자는 사회교리와 궤를 같이 하는 사회단체를 위한 사회기금 조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꼭 사회단체만이 그 역할을 할 이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 비로소 사회교리는 원리가 아니라 삶이 되고 고백이 될 것입니다. 이때 교회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밖으로 방출하고 또 밖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언어'를 안에서 온전히 소화하는 양방향의 운동 역시 쉼 없이 이루어져야함은 물론입니다. 혹자가 말하듯 저 남녘 섬의 문정현 신부와 같이 현장에 코를 박고 사는 '예언자'는 아닐지라도 삶의 방식을 복음에 맞춘 무수한 '멘토', 영감을 주는 이들이 길러져야합니다. 밀양의 수녀들처럼 말입니다.
가난한 이들과의 접촉은 접촉으로 끝나지 않고 그 자신을 가난하게 한다
발제자는 가난한 교회가 되긴 위한 첫 번째 단계를 '교세'라는 '영적 세속성'의 극복이라 진단했습니다. 양극화의 위기로 배제된 이들과의 명시적 연대가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불편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한국의 상황만은 아닐 것입니다. 교황조차 분명하고 직접적인 복음의 메시지를 교회는 자주 자기보전을 위해 애써 희석하고 수식어로 논조를 흐렸다고 개탄합니다. 도구가 실재의 해명에 봉사하지 않고 오히려 실재와 더 멀어지게 한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198항) 구원의 성사인 교회가 구원이 아니라 자기 안위만을 돌본 꼴과 같습니다. 단선적인 해석일 수 있겠지만, 정처 없이 떠돌던 새로운 믿음의 집단, 초기 교회 공동체에게 번영을 선물한 '콘스탄티누스의 대전환'부터 교회는 어쩌면 들판과 시장 통의 사람 냄새가 나던 복음을 '자기보전'과 맞바꾼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자기보전의 욕구에서 교회는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국'에 대한 봉사로, 양적 성장으로, 교세와 영향력으로 시대마다 얼굴을 달리해왔을 뿐입니다.
사회교리가 말하는 연대성과 보조성의 원리는 원리 이전에 복음입니다. 복음은 다른 말로 삶의 방식(modus vivendi)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양극화의 위기 역시 세계관과 가치체계에 대한 차원에서 논의되어야합니다. 높은 산자락을 깎아내 깊은 골을 매워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연대성의 원리라면 그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무색무취의 공평무사, 진공의 중립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입니다. 평화가 정의의 열매(사목헌장 78항)인 이유입니다. 힘이 센 자와 맞닥뜨린 약자 앞의 복음의 공정은 약자의 편을 들어 균형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등한 삶'이라는 인간의 유토피아적 슬로건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려하는 하느님(복음의 기쁨 197항)의 '중립'이고 '공정'입니다.
문제는 이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명시적인 '편들기'는 수많은 갈등과 불편을 야기합니다. 그렇다고 "신자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걱정하여 교회가 하는 말은 자꾸 구체성을 피하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좋은 말, 관념으로 도피"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갈등은 오히려 조장되고 불편은 증폭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수용, 곧 신앙한다는 것은 삶의 방식에 직결된 문제이고 전인적 귀의를 의미하기에 미사여구나 관념으로 적당히 미봉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갈등을 방지하기위한 구체를 잃어버린 보편적 관념, 진공과 같은 중립의 지대는 복음에 없습니다.
이 불편은 '때'를 앞당깁니다. 다시 말해 선택의 순간을 깨닫게 합니다. 가난과의 직접적 접촉은 현장에서 스스로 말을 건네는 복음 말씀처럼 불가피하게 그 자신을 가난하게 합니다. 그것은 무참히 학살당한 동포들의 죽음을 항의하기 위해 찾아간 군부의 전과 다른 싸늘한 시선과 으름장 앞에 당황하는 영화 속 로메로 주교의 표정과도 같습니다. 이전의 로메로와 이후의 로메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그를 대접한 군부보다 로메로 자신이 더욱 분명히 깨닫는 사실처럼 말입니다. 이제 그도 가난한 사람입니다. 곧 상처 입은 치유자의 탄생입니다. 가난한 이들과의 접촉은 접촉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듭니다. '교세에 안주하는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라 제도로서의 교회'(복음의 기쁨 95항)일뿐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하는 '불편'을 더욱 촉진해야합니다. 그때 '때'는 스스로 찾아옵니다.
'신선한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공의회를 통해 바라는 점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한 요한 23세의 목소리가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마르셀 르페브르(Marcel François Marie Joseph Lefebvre, 1905-1991)와 같은 전통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은 교회의 새로운 자기이해를 거부하고 창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1978년 두 차례의 교황 선거에서 유력한 교황 후보였던 제네바의 시리 추기경 역시 "교회가 요한 23세의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앞으로 5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라고 빗대어 공의회에 대한 불쾌한 심사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교도권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공적 해석'은 공의회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과거 전통과의 단절을 초래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교회의 '품위'를 잃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불편함은 비단 반세기 전의 유럽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발제자가 적시한 교회 내 대규모 의료사업과 교육사업, 양적성장의 도구로 전락한 사회복지사업 등 '새로운' 교회와 대척점을 이루는 '제국'의 교회는 많습니다. 때문에 교황의 '밖으로 나가는 교회'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도전과 갈등, 끊임없는 불편을 야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교회는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로마제국이 복음 선포와 정의를 위한 투쟁과 인간 존엄의 수호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복음의 기쁨 263항)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국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지만 '결국' 그 한복판에서 비로소 교회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의 기쁨이 꿈꾸는 가난한 교회를 축복하며 여전히 유효하고 생기 있는 요셉 라칭거의 작은 교회론으로 논평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오늘의 위기로부터 또 하나의 교회가 솟아나리라.
많은 것을 잃고 보잘 것 없이 작아져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교회.
번영의 시대에 지었던 건축물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교회.
신자 수는 격감하고 사회적으로 누리던 특권도 내려 놔야 하는 교회.
하지만 경험의 중심에 다시 신앙을 놓는 소수의 운동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교회.
몹시 영적인 교회가 솟아나리라.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바람둥이 노릇이나 하며
자기의 정치적 중요성을 은근히 뽐냈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한결 영적인 교회,
가난한 이들의 가난한 교회가 나타나리라.
마침내 세상은 보리라.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믿음의 작은 무리를!
세상은 얻으리라.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해답을!
자신들에게 희망이 될 작은 양떼를!
(Joseph Ratzinger,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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