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다 (강론)

인간 역사와 맞닿아있는 하느님의 역사 (올리베따노 수녀회 '빛둘레' 2014년 봄호)

바깥 주인장 2014. 3. 25. 12:46

인간 역사와 맞닿아있는 하느님의 역사

장동훈

이 글은 2014/3/21서울교구 열린사회교리강좌, 역사와 교회란 주제로 열린 특강을 위해 작성되었고, 다시 수정해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빛둘레(2014년 성탄호)에  실은 원고입니다.

 

예수의 시간, 교회의 시간

스위스 바젤은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다른 유럽의 도시처럼 이렇다 할 유적이나 볼거리가 없는 반듯한 도로와 건물이 늘어선 무미건조한 금융도시입니다. 그곳 시립 미술관의 그림 한 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볼품없이 말라버린 육신이 누워있습니다. 죽기 전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입은 반쯤 열려있고 눈도 채 감지 못했습니다. 산발한 머리며 모래처럼 푸석해 보이는 살갗에 갈빗대와 광대뼈가 선명히 도드라집니다. 손과 발에는 검은 피멍이 들어있고 간신히 생식기를 가리고 있는 천 조각 홀로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와 대조를 이룹니다. 그림은 뉘인 직사각형에 꼭 관 같은 액자틀로 마감되어있습니다.

한스 홀바인(1497-1543), 프로테스탄트 개혁 이후 종교 갈등이 유럽 전역을 휩쓸던 시기. 귀족과 왕족들의 초상을 그려주던 이름 있는 궁정화가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폭력과 고통이 고스란히 배긴 이 주검에는 아욱스부르그 주교좌성당의 제단화나 왕족 일가의 초상화 속 단정한 그의 필체는 없습니다. 육신을 뒤집어쓰고 사는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작정이라도 하고 알리고 싶었는지 육신에 남긴 적나라한 고통들은 너무 적나라해 꼭 이 세상 것 같지 않을 정도입니다.

'예수의 시신', 이 볼품없는 육신이 달고 있기에는 참으로 발칙하고 불경스러운 이름입니다. 생명의 불씨가 꺼져버린 저 육신이 오늘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삶을 송두리째 내어 맡기는 하느님 아들의 거처였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하느님의 인간되심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몽환적이거나 신비하지도, 또 신화처럼 희화적일 수 없는, 어금니를 꼭 깨물 만큼 고통을 감내하는 우리와 똑 같은 '적나라함'인지도 모릅니다. 연약한 육신의 그가 영원을 품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이 역설은 놀라운 일인 동시에 매일을 살아가야하는 신앙 공동체의 '자기 신원'과 같은 것입니다.

가장 무력한 모습으로 권력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이, 하느님과는 어울리지 않는 눈물로 가장 하느님답게 세상의 고통을 품은 사나이, 인간 나락에서 뒹굴면서도 가장 고귀하고 빛나는 인간으로 진창의 시간을 살아낸 이. 모멸을 받으면서도 능멸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부끄러움을 안겨준 이, 요절할 만큼 짧고 뜨겁게 사랑해 무수한 이들 안에 영원히 사랑으로 남은 이. 그가 바로 이 볼품없는 육신의 주인 예수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 사실 앞에 우리는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순결성이나 경건한 전례, 또는 심리적 위안이나 안정처럼 시간도 공간도 없는 진공(眞空)의 것이 아닌 삶의 파고와 성장과 쇠락을 감당해야하는 세상의 시간과 맞닿아 있는 '역사적 실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 교회의 시간은 예수가 보여준 시간이며 세상의 시간입니다.

역사를 통해 하느님의 얼굴을 알아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여러 영감자 중 하나였던 존 헨리 뉴먼(1801-1890)은 신학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신학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추상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원된 인간을 통해 발견하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다." 뉴먼의 이 정의를 단순히 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 중 다수의 신학자들이 차용했던 '귀납적 신학 방법론'의 실례로만 이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소수의 신학자들만 알아듣던 학문적 방법론이 아니라 교회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기 시작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뉴먼은 하느님을 단순히 '관념'이나 '개념'이 아닌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인간적 상황, 즉 인간으로서 직면해야하는 모든 한계와 사건, 인생 여정을 의식하는 가운데 만나는 구체적 실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대전제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건들을 통해 사랑을 실감하고 이해한 인간으로 출발해 사랑 가득한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겪는 시간과 공간, '역사'라는 '한계와 제약'이 곧 '신학 하는 마당'이고 '하느님을 알아보는 자리'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통해, 곧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당신 자신을 전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자각은 종국에는 자신 스스로를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으로 정의하는 자의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곧 교회는 고정불변의 진리를 보전하는 담지자가 아니라 세상의 풍파, 인간들의 희로애락 한 가운데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하느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사건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께서 오늘날 당신 교회에 요청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자 계속해서 늘 주의 깊게 깨어"(이브 콩가르)있는, '시대의 징표'에 대한 예민함을 지녀야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 역사와 맞닿아있는 하느님의 역사

이 역사적 실재로서의 교회는 자신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구원을 향한 여정 중인 순례자로 고백합니다. 그 길은 멀고 지루하며, 아프고 채이며 불완전합니다. 이 국면에서 교회의 최대 관심사는 다름 아닌 인간의 '삶', 교회가 여정 길로 삼고 있는 '세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하느님을 알아보는 자리이고 구체적 사건, 역사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공의회의 교부들은 아래와 같이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 인 것이다. 진실로 인간적인 것이라면 신도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신도들의 단체가 인간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목헌장 1항)

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교회 자신의 신원의식은 자연스레 자신이 알아본 하느님의 얼굴, 곧 구원의 메시지가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인류 역사 전체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역사가 바로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신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모여 성부의 나라를 향한 여정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할 구원의 소식을 들었다. 따라서 신도들의 단체는 사실 인류와 인류 역사에 깊이 결합되어 있음을 체험한다."(사목헌장 1장)

이러한 확신은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의 평소 생각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요한 23세가 공의회 개최의지를 표명하자 교황청이 술렁였습니다. 교황에게 돌아온 것은 환호나 지지가 아니라 물정 모르고 철없는 변방 출신 주교의 치기로 폄하된 싸늘한 시선이었었습니다. 교황청 관료들도, 추기경단도 혹여 지금까지 쌓아온 교회의 명성과 사회적 위신이 흔들릴까 불안해했습니다. 그들의 우려에 늙은 교황은 이렇게 화답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이 충만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입니다." 그에게 교회는 진리를 보전하고 수호하는 것에만 마음을 쏟는 수문장이 아니라 세상의 풍파에 몸을 실은 '하느님의 모험', '하느님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후일 '그의 교회'는 공의회 문헌에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고스란히 갈무리되어 담겼습니다.

수세기 전, 저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작품의 작가는 어쩌면 어렴풋하게나마 예술가 특유의 직관으로 인류 구원의 지도(地圖)가 바로 저 형편없이 무너져버린 육신에 담겨있음을 깨달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인간되심, '육화'는 어쩌다 일어난 신의 외도(外道)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인류에게 걸어온 유일한 말(言)인 것입니다. 말씀이 참으로 사람이 되신 연유입니다.

복음은 위험을 초래한다.

교회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은 어떠합니까? 현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권고문에서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로마제국'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제국이 복음 선포와 정의를 위한 투쟁과 인간 존엄의 수호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복음의 기쁨 263항) 초세기 교회의 어려움을 풀어가는 과정에 등장한 이 표현은 글의 문맥상 단순히 이미 멸망해 사라진 역사 속 로마제국을 의미할 수 도 있겠지만 문헌의 전체적 '맥락'으로는 좀 더 넓고 많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 역사를 뒤돌아보면 '제국'은 한 번도 완전히 소멸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탄생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까지를 기술한 최초의 교회사가 에우세비오 주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서슴없이 '하느님의 동료', '제 2의 그리스도'라 지칭합니다. 박해받던 신앙 공동체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황제에게 돌리는 찬사치고는 과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도 스스로를 '교회 밖의 주교'로 명명했고,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의가 확정된 초기 공의회들 모두 황제령에 의해서 소집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입니다. 정처 없이 떠돌던 처지를 벗어나 이제 안정기에 접어든 교회. 황제의 공의회 소집으로 교회 내 지금까지의 말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정리하고 통일된 교의를 확정한 것이 제국의 이념적 통일을 꾀하기 위해서였다는 해석 역시 너무 단편적이고 지극히 정치적인 해석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 교회는 자주 제국에 매료되거나 순응했고, 또 저항하고 투쟁해왔습니다. 제국은 '대제사장'(pontifex)이나 '국가'로, '세상의 질서', '이데올로기' 또는 '자본'으로 제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어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초세기 교회 공동체가 자신들을 어떻게 정의했냐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교를 명시적으로 창립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를 따르던 이들 역시 자신들을 독립된 무리나 새로운 종교 집단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은 이 새로운 집단을 단지 헤세나파나 바리사이파와 같은 당대 유대교의 하위 그룹들 중 하나로 이해했고 자신들 역시 유대교 내의 영적운동 집단정도로 여겼을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와 베드로의 할례 논쟁을 떠올리지 않고서라도 그들은 여전히 유대전통을 지키는 유대인들, 또는 그 문화에 깊이 동화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교와의 간극은 점점 커져갔고 이윽고 유대인들에게도, 점령자였던 로마인들에게도 위험한 존재들로 인식되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세로 가름되었던 황제숭배 역시 이 새로운 집단에게는 예외로 적용되었습니다. 이는 자신들 스스로도, 또 외부인들 역시 차츰 그들을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집단으로 인식했다는 증거입니다. 새로운 믿음, 곧 그리스도교의 탄생입니다.

주목할 것은 그들 스스로 새로운 종교집단으로의 자의식을 갖추기까지 정치적으로는 제국의 질서와 충돌해야했고,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의 권위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인 이후 박해시기의 '형식적' 배교자들의 복귀를 둘러싼 이른바 도나티즘(donatism) 논쟁 역시 '콘스탄티누스의 규범', 곧 '세상의 질서'와 병립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질서'를 깨달은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자의식의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차츰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지만 세상 것들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임을 자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초래된 위험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신원의식을 얻는 유일한 길이었으며 하느님의 법을 선포하기 위해 치러야했던 대가였던 것입니다. 복음은 필연적으로 위험을 감수합니다.

인간 구원의 전인성

근래 '정교 분리'를 회자하며 종교더러 세상의 일에 관여하지 말고 '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 하라는 혹자들의 충고는 복음에 대한 '제국'의 또 다른 도전입니다. 정교 분리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국가'의 출현과 함께 등장했다는 역사적 기원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서라도 교회의 심장인 복음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충고들이 얼마나 완벽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사가 인간 역사와 맞닿아있다는 역사적 체험을 통한 교회의 고백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곧 믿음이 성장하고 하느님을 알아보는 곳, 구원이 완성되는 곳은 다름 아닌 이 인간 역사 한복판, 세상입니다.

교회가 고백하는 인간 구원은 '전인적'(全人的)이며 '사회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전자가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자는 구원이 '선포되는 자리', 곧 세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은 모든 법 위에 존재합니다. 초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직면한 박해는 위법과 범법으로 사회 질서를 훼손했다는 단순한 법률적 개념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심층적인인 기원을 지닙니다. 그것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요구되는 삶의 방식(sequela Christi),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곧 세계관(世界觀)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복음이 요구하는 인간상은 동질성을 느끼는 집단에 합류할 때 요구되는 조건과 같은 단편적으로 개별화되거나 범주화 될 수 없는 총체적 인간, 즉 전인적 인간입니다. 현대 철학의 개념을 빌리자면 '실존'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초월자에게 투신한 실존, 즉 복음이 요구하는 하느님의 법을 자신의 삶의 방식, 가치관으로 삼는 이들이었습니다. 교부들이 인간 각자가 지닌 '양심'을 '하느님의 거울'로 표현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의 규범, 곧 세상의 질서는 하느님의 질서에 귀의한 존재에게는 상위의 것일 수 없으며, 이들은 자신이 몸담은 질서와 세상의 질서가 상충할 경우 박해를 감내합니다. 교회의 역사가 박해의 역사였던 이유입니다. 박해를 통해 교회는 오히려 자신을 단련하고 정화했습니다. 이처럼 믿는다는 것은 전인적 투신과 같습니다. 홀바인이 그린 저 처참한 육신처럼 말입니다. 남김없이 다 쏟아 부은 사람! 복음적 전인성의 모범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불순한 기억'을 품는 것이며 또 위험을 동반합니다.

삶의 방식 자체가 변모한 인간들, 이 전인적 존재들에게는 공동체 안팎의 삶이 다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구원은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뻗어나갑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은 사회로 확장되어 하느님의 질서를, 복음이 요구하는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케리그마(kerygma, 선포)가 복음의 핵심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구원할 상대, 복음 선포의 대상은 인류전체, 곧 인간 역사 전체인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사회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학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현 교황 프란체스코의 정의(복음의 기쁨 198항)는 선포로서의 복음의 속성을 그 어느 것보다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신념이 아닌 실존 전체가 변화하는 것으로, 복음의 요구는 종교적 또는 도덕적 의무 이전에 믿는 이의 삶 전체에 대한 요구, 삶의 방식에 대한 요구입니다. 복음은 전인적이고 사회적인 구원을 요구합니다. 다른 말로는 믿음은 그 자체로 매우 인간적이며 사회적인 행위이자 신비적인 행위입니다. 곧 구원은 복음적 열정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교회가 요구하는 '정의'(正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정의는 일반 사회학이나 경제학에서 논하는 정의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귀속, 비례, 교환, 분배, 분담, 사회 정의 따위의 일반적인 사회학적 개념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 보다 확장된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주년'(1931)에 처음 등장한 '사회 정의'의 개념은 후임 교황들의 문헌에 반복되면서 더 넓게 확장되었고 평화의 개념과 쌍을 이루게 됩니다. 평화와 연결된 정의의 개념은 다른 일반 사회학적 논의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념으로 그 자체로 매우 교회적이고 복음적인 특성을 드러냅니다. '사십주년'에 등장한 '공동선의 요청'으로써의 정의는 요한23세를 거쳐, "항상 더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할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 또는 "평화는 정의의 작품" 등으로 표현되며 사목헌장(75, 78항)에 갈무리됩니다. 근래 현 교황 덕분에 자주 회자되는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의 문헌인 메데인 문헌(1968)의 "사회 정의는 인간의 총체적 해방을 위한 복음의 요구이며 하느님의 요구"라는 해설이나, 요한 바오로 2세의 "정의에 대한 투신은 평화에 대한 투신과 밀접하게 연결"(노동하는 인간)된다는 정의에 대한 해설 모두 복음이 요구하는 '구원'이 인간 한 단면의 결핍을 보충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전인적 구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전인적 인간의 구원, 곧 '총체적' 구원에는 개별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구원까지 포함됩니다.

참호전의 교회에서 순례의 교회로

교회의 전인적이며 사회적 차원의 구원 이해는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를 필두로 하는 근현대 교회의 사회 회칙들에 잘 집약되어 나타납니다. 문헌마다 당대 교회의 인간과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처방이 상이하긴 하지만 '근대'라는 '새로운 사태'로 야기된 세상의 문제점이 교회 자신의 신원을 되묻는 계기로 작동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외부 세계에 초래된 사태들이 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복음과 믿음의 본질을 다시 묻게 했고 자신을 새롭게 성찰하고 정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신적 질서에 가지런히 담겨있던 중세라는 견고한 세상에 서서히 균열이 가자 교회는 비오 9세의 실라부스(1864년, syllabus 근대 오류 목록)와 성직자와 교사들의 '반근대주의 선서'(1931년까지 의무)처럼 외부 세계로부터 유입되는 오염된 공기를 차단하려 '참호전'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전투의 양상은 말 그대로 교착 상태를 거듭했고 그러는 사이 세상은 교회로부터 더 멀어져갔습니다.

교회는 서서히 근대 세계가 쏟아내는 온갖 오물들을 과거처럼 구령 사업등과 같은 전통적이고 미봉적인 방식에 기대 더 이상 해결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교회는 그 오물을 생산하는 근원지, 곧 '악의 구조'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교리의 기원이자 사회적 영성의 시원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문을 활짝 열고 오물을 치우려 거리로 뛰어든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세상과 교회의 관계, 복음의 시대적 요청과 구원의 역사성을 다시 숙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태' 이후 사회문제에 대한 교도권의 일련의 가르침들은 이미 제 2차 바티칸공의회의 기초적 뼈대를 '준비'했고 또 그 안으로 수렴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참호전의 교회에서 대화의 교회로, 단절에서 소통으로, 단죄에서 긍정과 이해로, 이 이례적인 공의회가 교회에 가져다 준 세상을 맞이하는 태도의 변화를 수식할 표현들은 차고도 넘칩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세상에 대한 완전한 긍정이나 동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의 구원의 대상이고 동시에 교회가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고 사명을 완수해야할 '구원의 자리'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세상은 신학자들의 '신학하는 마당'이고, 하느님 백성의 '순례길'이며, 교회의 '하느님을 알아보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복음, '오래된 미래'

세상을 호령하던 로마제국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제국'은 여전히 건재하고 매혹적이며 세상은 교회가 통째로 '야전 병원'으로 변모해야할 만큼 상처투성이의 전쟁터입니다. 하지만 역사 내내 교회는 자주 '제국'에 매료되어 혼미해졌고 그때마다 복음의 샘물에서 물을 길어 자신을 회복하곤 했습니다.

교회사는 물론, 넓게는 인류사에서도 '20세기의 찬란한 유산'으로 기억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교회의 쇄신과 개혁을 위해 두레박을 내린 곳은 다름 아닌 '복음'이라는 자신의 발원지였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원천으로 돌아가 발견한 것이 과거의 유산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그 원천에서 오히려 다가올 세상을 용기 있게 대면할 '전망'이라는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꼭 노르베르 호지가 티벳의 오지마을에서 발견한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처럼 말입니다. 과거로의 회귀가 앞날을 맞이할 종말론적 전망을 선사한 것입니다. '기억'이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국면에서 오늘의 교회를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물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는 공의회를 어떻게 품었고 또 살아가고 있는지' 입니다. "신선한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공의회를 통해 바라는 점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한 요한 23세의 목소리가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마르셀 르페브르(Marcel François Marie Joseph Lefebvre, 1905-1991)와 같은 전통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은 교회의 새로운 자기이해를 거부하고 창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1978년 두 차례의 교황 선거에서 유력한 교황 후보였던 제네바의 시리 추기경 역시 "교회가 요한 23세의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앞으로 5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라고 빗대어 공의회에 대한 불쾌한 심사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또 공의회의 새로운 기운을 흠뻑 세례 받은 이들이 '역사적 전환'과 '새로움'에 비견해 공의회에 찬사를 보내는 와중에도 교도권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공적 해석'은 공의회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과거 전통과의 단절을 초래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교회의 '품위'를 잃게 하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염려했고 노심초사했습니다. 어쨌든 공의회는 '20세기의 빛나는 유산'이란 찬사와 함께 우려와 거부, 환호를 동시에 받았고 또 여전히 받고 있으며, 공의회 메시지의 교회 안으로의 '뿌리내림'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요원해보입니다.

근래, 전임 교황들과는 달리 환호와 열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프란체스코 교황에 대한 이례 없는 열기도 어쩌면 50년 전 폐막한 공의회가 아직도 교회의 '삶'까지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첫 권고문의 면면을 살펴보면 복음과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자신 깊숙이, 삶의 방식 저 밑바닥까지 받아들인 참 신앙인으로써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입니다. 그에 대한 환호는 공의회와 복음의 정신이 삶의 근저까지 뿌리내린 사람이 뿜어내는 향기에 매료된 때문일 수 있겠습니다. 곧 '제국'에 혼미해지거나, 복잡한 신학적 수식으로 오히려 혼탁해진 복음이 아닌, 투명하고 간결하며 선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그의 말과 행동에서 길어 올릴 수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마치 공의회가 원천으로 내려가 건져 올린 '원복음'(元福音), 곧 예수라는 유일한 '사건'을 제 심장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만난 반가움과 놀라움, 낯설음처럼 말입니다.

복음은 가공되거나 해석되지 않은, 또 되지 말아야할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원형 그대로의 '날것', '과거 중의 과거'로 보이지만 신비롭게도 이 복음의 분명한 요구들, 복음의 '정언적 명령들'은 믿는 이들에게 내일을 위한 전망을 제공합니다. 원천으로의 회귀가 미래를 전망하게 합니다. 이것이 공의회가 두 기둥으로 삼은 '원천'과 '전망'이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교회의 시간'이며 이천년 전 육화의 참 뜻이자 안타깝게도 여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교황은 이를 안타깝게 또 절박하게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복음의 요구) 매우 분명하고 직접적이며, 아주 단순 명료하여, 교회는 이를 상대적으로 해석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본문들에 대한 교회의 성찰은 그 힘을 줄이거나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용기와 열정을 가지고 그 권고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합니다. 왜 그토록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듭니까? 개념적인 도구는 설명하고자 하는 실재에 더 가까워지게 하려는 것이지 우리를 그 실재에서 더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형제애로, 겸손하고 너그러운 봉사로, 정의로, 가난한 이를 향한 자비로 그토록 힘차게 초대하는 성경의 권고들을 설명할 때에 그러합니다. (...) 왜 그토록 분명한 것을 구름으로 가립니까. 우리는 단순히 교리적 오류에 빠지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빛이 가득한 이 생명과 지혜의 길에 충실히 머무르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통 교리의 옹호자들은 가끔 수동적이거나 특권층이라는 지탄을 받으며, 무참한 불의의 상황과 그 불의를 지속시키는 정치 체제와 관련하여 공모자라는 비난을 받습니다."(복음의 기쁨 194항)

교황에 따르면 복음은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에둘러감 없고 군더더기 없는 복음, 이 원 메시지에 대한 충실성, 복음의 정언을 깨닫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만이 미래를 전망할 수 있습니다.

 

저항은 믿음의 맥박

'제국'은 아직도 교회를 압도합니다. 그것이 어떤 이름이던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회가 고백하고 구원의 역사가 증명하는 분명한 것은 '제국'이 압도하는 이 세상이 바로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전망할 수 있는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당'이며, 이 여정의 '유일한 동반자' 역시 복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저 옛날 길을 가늠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주시했던 광야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처럼 말입니다. 마치 그 옛날 낙담한 제자들이 엠마오의 모퉁이에서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 32) 고백하며 간신히 기억해낸 살아있는 스승의 얼굴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유일한 것은 복음의 단순함이고, 충실히 살아야할 것은 복음의 분명한 요구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권력의 요구, 세상의 질서로부터 말씀을 지키려했던, 초세기 믿음의 선배들이 지녔던 '절박함'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절박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유일하게 그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목숨이고 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무엇과 바꾼다는 말입니까. 저항(抵抗)이 그들 믿음의 맥박이 된 연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