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6일 금요일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미사 강론
방금 선포한 요한복음 21장은 복음의 ‘부록’에 해당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21장은 20장까지의 본문보다 후대에 작성된 문헌입니다. 하지만 학자가 아니더라도 글을 유심히 읽는 독자라면 21장이 나중에 덧붙여진 본문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해 봅니다. 무엇 때문에 21장을 덧붙인 것일까. 복음은 부활 이후의 이야기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란 표현이 암시하듯 제자들은 부활한 스승을 만나고도 ‘제자’ 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죽음을 뚫고 승리한 스승을 만나 큰 열정과 감동을 얻었을 제자들임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과거로 다시 돌아간 듯한 모습입니다. 어느 날 저녁 ‘진리’를 묻기 위해 스승을 찾아 까만 밤을 헤치고 왔던 니코데모가 스승과 동문서답을 주고받곤 다시 자신이 헤치고 온 밤길로 되돌아가는 듯한 모습입니다.
잠깐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21장이 다른 복음보다 후대에 쓰인 요한복음 가운데서도 가장 후대에 부분이라면, 무언가 그럴만한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대략 70-100년경 저술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시 말해 원년이 예수의 탄생이라면 예수를 직접 목격한 1세대 제자들이 아주 고령이거나 세상을 떠난 후입니다. 시간에 장사 없듯, 제아무리 강렬한 체험이라도 스승을 대면하던 때의 열정이 고스란히 후대로 전수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저자는 ‘시간의 관성’을 잘 알고 있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스승의 가르침도 가뭇해지던 때, 또는 형식화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교회에 가르침의 참뜻을 알려줄, 흔들어 깨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치 마지막 만찬의 장면을 다른 복음과 달리 “만찬 때의 일이다.” 한마디로 갈음하곤, 곧장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는 모습을 소상히 묘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복음은 스승의 입을 빌려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명시합니다. 곧 참된 성찬례는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21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고기를 잡으러 가는” 사람들이 속출하던 즈음, 스승의 가르침의 정수를 다시 깨닫게 할 장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간 이들이지만 헛그물질만 합니다. 실패와 절망이 점철된 우리 일상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그들에게 다가가 낚는 법을 알려주고, 밤새워 고생한 이들을 위해 손수 아침을 차려줍니다. 가만히 상상해 봅니다. 아직 새벽 물안개가 채 가시기 전 노동으로 지친 이들 앞에 놓인 아침 밥상. 그것도 스승이 손수 차린 밥상. 큰 위로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오래전 스승의 약속을 참으로 신뢰하게 만듭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상이 계속되듯 나도 너희와 늘 함께 있겠다.’ 스승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던 초기 교회에 이보다 큰 위로와 선명한 가르침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요한복음을 읽던 때의 사람들과 우리도 따지고 보면 ‘동시대’를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승천 이후, 곧 예수님이 떠난 후의 시간, 스승이 부재한 시간을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스승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에게도 요한복음 21장 같은 ‘부록’이 필요합니다. 스승을 다시 음미할 수 있도록, 스승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스승이 차려준 만찬을 다시 맛볼 수 있도록, 스승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본문에 버금가는 부록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제게, 아니 이 시대 교회와 인류에게 요한복음 21장 같은 분이었습니다. 마치 스승을 다시 만난 것처럼, 제자처럼 지척에서 스승을 느낄 수 있도록 했던 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승을, 복음을, 교회를 몸으로 “재현”한 분이었습니다. 교황님을 만나는 동안 조금 더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조금 더 참된 교회를 상상하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휘청거리며 나가는 현실이었지만 하느님의 계획을 조금 더 넓은 전망에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오늘과 다른 내일,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년 전, 교황님의 첫 사도좌 권고 “복음의 기쁨”을 읽던 밤이 생각납니다. 지루할 거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지더니 이내 전율을 금치 못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주먹이 땀으로 젖었고, 더러 위로받았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니 아침이었습니다. 교황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교황님 덕에 그간 잊었거나 희미해져 제 안에서 꺼지기 직전이던 이미지들을 또렷이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교회’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코 현실의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씨앗처럼 품곤 있지만, 여전히 꽃피워야 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부단히 걸어야 합니다. 교황님은 이 ‘순례하는 교회’가 눈을 떼지 말아야 할 ‘원래의 교회’, ‘사도들의 교회’, 복음이 여전히 생생하던 교회를 “재현”해 보이셨습니다.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지만 가톨릭이라는 거대 조직을 유지하는 교황직의 ‘기능적’ ‘행정적’ 면모보다 스승 예수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재현적’. ‘사목적’ 면모를 초지일관해 보여주셨습니다. 첫 사목방문지로 찾은 거대한 난민캠프가 있던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부터, 선종 직전 감옥의 죄수들을 위한 마지막 방문까지, 쉼 없이 참된 ‘교회’를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전례와 교리, 특권에 집착하는 ‘은총의 세리’가 아닌 상처받은 이들 한 가운데 서 있는 “야전병원 교회”, “중심이 되고자 노심초사하기보다 거리로 나와 다치고 더러워지는 교회”, 돌과 벽돌, 고귀한 것들로 꾸며진 공간적 교회를 뛰어넘어 누구라도 깃들 수 있는 너른 품을 지닌 ‘어머니 교회’, “인간 불행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피신처”가 아닌 “다른 이들의 구체적 삶으로 깊이 들어가” 선포하는 교회, “중심이 아닌 변방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한 하느님을 따라 “가난한 이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는” 교회를 상상하고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또 교회는 길을 헤매고 휘청이겠지만, 교황님 덕에 잠시라도 엿보았던 그 교회를 시야에서 잃지 않고 걸어가길 희망합니다.
교황님 덕에 다시 찾은 또 다른 이미지는 ‘사제’입니다. 교황님은 자주 “양 떼 냄새 나는 목자”가 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말로만 권고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난한 이들의 하나로 사셨습니다. 그것도 흉내가 아닌 전심으로. 사도좌궁을 마다하고 순례자 숙소의 여느 투숙객처럼 사셨고, 순교의 의미를 담았지만 이미 특별하고도 권위적인 상징이 되어버린 교황의 붉은 구두가 아닌 낡은 검정 구두만을 신었습니다. 권력과 지위에 압도되지 않고 언제나 예수 탄생의 첫 소식을 들은 이들이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던 가난한 목동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던 분입니다. 가진 것 많고, 가끔은 덧없는 권력과 지위를 동경하던 사제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매우 비범했던 가난의 완덕입니다.
교황님은 주일 삼종기도 때마다 광장에 모인 신자들을 향해 강론하시곤 꼭 끝에 “Buon Pranzo”라고 인사하셨습니다. 기껏해야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는 평범한 인사말이지만 밥벌이의 고단함을, 그 준엄함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건넬 수 없는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잘 알았던,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제셨습니다.
마지막조차 사람들 가운데 마련하셨습니다. 무덤으로 지정한 로마 성모마리아대성당은 사목방문을 다닐 때마다 문안을 드리던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 공포에 떨던 가난한 이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변변한 치료조차 받을 수 없던, 기댈 곳 없던 가난한 이들이 살려달라 매달리던 ‘로마인들의 구원’(Salus populi romani)이라 불린 성모자 이콘과 십자가 거기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지막 모습까지 사람 곁에 있는 존재가 사제임을 가르쳐주신 셈입니다.
“복음의 기쁨” 끝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백성 가운데 있어야 하는 사명은 제 삶의 일부도 아니고 제가 떼어 낼 수 있는 장식도 아닙니다. (...) 저는 이 땅에서 하나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빛을 비추고, 복을 빌어주고, 활기를 불어넣고, 일으켜 세우고, 치유하고, 해방하는 이 사명으로 날인된 이들, 심지어 낙인 찍힌 이들로 우리 자신을 여겨야 합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있겠다고 마음속 깊이 결심한 이들입니다.”
그분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것도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이제 이 고백은 그분의 고백을 넘어 사제들의, 신자들의, 온 교회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어받아 완주할 사명입니다. 12년 동안 제게, 또 교회와 인류에게 소중한 ‘부록’이었던 교황님. 이 특별한 스승은 우리를 떠났지만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 그 나라는 여기에 있고, 다시 올 것이고, 새로 꽃피우고자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부록’들이 이 나라를 위해 분명 분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프란치스코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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