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다 (강론)

노동사목, 교회 쇄신과 사회복음화의 길목

바깥 주인장 2015. 5. 12. 21:45

노동사목, 교회 쇄신과 사회복음화의 길목

 

아래글은 지난 2015년 5월 3일, 천주교인천교구 노동자 주일 기념 심포지엄 발제문입니다.

서두에 밝히는것 처럼 전문가의 글이 아닌 노동사목을 사랑하는 이의 개인적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함께나눕니다. 

 

1. 우선 이번 발제는 심도직물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 제1발제와는 다른 성격의 발표임을 밝혀둔다. 심도직물 사건은 한국 노동사의 6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일반적인 수준의 평가와 같이,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역사에서도 교회가 노동문제에 개입한 최초의 사건 정도의 위상에 머물러왔다. 그런 의미에서 제1발제는 이 사건에 참여하고 연관된 당사자들의 증언 등에 기대 사건을 거의 처음으로 실증적으로 재구성하고 생생히 복원한 의미 있는 작업이다. 다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연구 발표에 이어서 한국 노동사목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역사적 고찰이 뒤따라오고 마지막으로 노동사목의 오늘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기획되었다면 더욱 완성된 심포지엄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다.

어쨌든 본고는 심포지엄 기획자의 제안대로 짧고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던 노동사목 전담 신부로서의 노동사목에 대한 나름의 전망과 제언을 담고자한다. 따라서 본고는 정확한 데이터에 기댄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전문가의 무엇이라기보다는 노동사목에 대한 '두서없는' 애정과 안타까움이 혼재된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난한 체험에 기댄 한 사제의 주관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혀둔다.

 

2. 노동이라는 양쪽으로 난 창

1840년 이후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는 산업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농촌경제를 기반으로 하던 기존의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라는 ‘새로운 사태'를 직면하며 교회가 가장 먼저 현실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산업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의 출현 때문이다. 공산당 선언 이후 빠른 속도로 교회로부터 이탈하던 노동자들에 대한 고민은 교회의 첫 노동헌장이자 사회문헌으로, '최초'라는 수식어를 동반한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1891)를 낳았다. 최초의 문헌이지만 사실 산업혁명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 공산당 선언으로부터는 반세기가 지난 다음에야 발표된 다소 뒤늦은 대응이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교회의 수많은 사회문헌은 어쨌든 첫 회칙이 견지한 기조와 골격을 다양한 현실에 맞추어 교정하고 재생하였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자들이 감당해야하는 가혹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낳은 노동에 대한 교회의 첫 번째 성찰의 목적지는, 단지 이러한 현실을 생산하는 구조적 원인,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비판에만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기존 질서의 붕괴 이후 더 이상 교회로부터 영감을 얻지 못하던 신자 노동자들의 이탈의 방지라는 다급한 필요성에서 고민되었기에, 교회는 당시 지배적인 자본에 대한 방임주의와 자유 경쟁 등의 자본주의 원칙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노동 대중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비춰지던 공산주의와의 분명한 간격도 견지해야만했다.(단편적인 예로 레오 13세는 회칙을 통해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인정했지만 당시 들불처럼 일어나던 '노동조합'은 명시적으로 긍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현실적 고통들의 원인이 개인이 아닌 사회의 구조에 있음을 간파한 통찰력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교회의 이러한 '제3의' 입장을 (그렇다고 완전한 중립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했고 그 안에서의 활동을 목표했다) 더러는 현실 진단과 대안이 결국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절충주의'의 일종이며 현실에 대한 수세적 입장에 불과하다 비판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의 입장은 향후 노동에 대한 교회의 두 가지 목표를 이미 상정한 셈이다. 곧 노동자의 복음화와 사회의 복음화라는 양방향의 운동이다. 이는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노동자들의 교회로의 편입과 노동자들 안으로 들어가 교회를 건설하는 형태라는 양방향의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실제로 보편교회의 이러한 입장은 밖으로는 당시 ‘절대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던 자본과 시장에 대한 불간섭주의에 대한 견제와 함께 노동관계법의 제정에 일조했고, 교회 내적으로는 현실 문제에 대한 교회의 책임 환기와 이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헌신을 낳았다.

결국 노동은 중세 이래 외부 세상으로 교회가 낸 첫 번째 창(窓)으로써, 이후 지금까지 밖으로는 복음적 감화라는 영감을 분출하고, 안으로는 현실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여 자신의 내부를 성찰하고 쇄신을 꾀할 수 있는 주요한 통로이다.

 

3. 유토피아와 대조사회

앞서 언급한대로 근대라는 폭풍우 속에서 탄생한 첫 사회회칙의 태생적 한계라 할 수 있는 '절충주의'적 입장은 (새로운 사태가 당시 현실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묘사와 성찰을 담고 있다 할지라도 그 전체적 언어형태를 본다면) 이후 지속적으로 교회 안에서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든) 외부 세계의 현실에 대한 해석에서 그 어느 편도 불편하게하지 않을 '중립'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 또는 외부를 향한 그 어떤 자극과 감화도 기대할 수 없는 추상적이고 설득력 없는 고립된 언어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교회의 언어는 자주 '보편'의 담보를 위해 구체와 분명한 선택을 누락시킨 나머지 언어로 담겨진 '가치'의 본연의 빛과 에너지를 퇴색시켜왔다.

이러한 입장이 한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애초에 교회는 종말론적 공동체로서 '대안'(代案, utopia)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조사회'(對照社會, Civitas Dei, 하느님의 도시)를 예시할 뿐이라는 사실 역시 상기하고 싶다. 다시 말해, 교회가 지향하는 것은 그 어떤 '사상'이나 '주의'처럼 특정한 지상의 유토피아의 건설을 제시하는 것이라 아니라, 이 세상과는 다른, 도래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저 너머의 대조사회를 앞당겨 그것을 "미리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천착하는 관심사는 구조의 건설이 아니라 가치, 곧 결국 구조를 가능케 하는 인간 의식의 고양에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특성은 앞선 발제의 가톨릭노동청년회의 경우처럼, 신자 노동자를 투철한 신앙인으로 양성하는 애초의 계몽적 경향(JOC의 최초의 목표는 양성과 선교였다)이 개인의 계몽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적 문제들을 직면하며 현실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는 '사회복음화'에의 투신으로 확장되고 전이되는 경향에서 잘 드러난다. 1925년에 창립되어 1958년 한국에 도입된 가톨릭노동청년회의 운동 역시 실제로 심도직물(1967)과 연이은 60년대와 80년대 사이의 노동현실을 직면하면서 근로기준법의 준수와 노동 관련법의 개정 등의 외부 세계의 교정에 일조하는 한편, 보다 적극적인 복음화를 위해 노동자들 안에 현장교회를 건설하려는 노동사목의 탄생에 공헌했다.

결국 개인은 공동체로, 인간의 인간화와 복음화는 사회의 복음화로 확장되어왔다.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여정"의 이 운동은, 따라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빛나는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교회의 새로운 자기 정의, 곧 "지상을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과 궤를 같이한다. 여정은 그러므로 패배의 거듭 이지만 당장의 결과가 아닌 과정이자, 매우 느린 전진이고, 어쨌든 포기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신뢰다.

 

4. 노동사목, 교회쇄신과 사회복음화의 길목

교회의 사회회칙의 이러한 특성은 긍정적 의미에서 유연하고 탄력적이라 정의될 수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불변하는 교의가 아니라 세상의 구체적인 문제를 복음에 비추어 성찰하고 해석하는 일종의 틀로써, 가변적인 현실세계를 단지 대상이 아닌 신학하는 자리이자 신앙을 완성하는 마당으로 긍정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날의 노동사목이 주시했고 또 앞으로도 주시해야하는 '두개의 깃발'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다. 그것은 현실세계를 신앙을 해석하고 완성하는 마당으로 여긴 이상, 세상을 교정의 대상만이 아니라 복음화 되어야하는, 다시 말해 하느님의 대조사회를 앞당기는 교회의 자리로 삼아야한다는 것이며, 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교회 역시 자신을 성찰하고 더욱 복음화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곧 세상의 복음화와 교회의 자기쇄신이라는 동시성이다.

이를테면, 20세기 중반 유럽의 노동사제 운동은 당시 갈등을 빚던 교회와 노동계 사이에서 노동자들의 교회에 대한 이미지 재고와 적대감 해소라는 소극적 목표로 출발해 노동자들 안으로, 곧 그들과 함께 살며 참 교회를 실감하게 하는, 나아가 "노동계 안에 교회의 새 지체를 건설"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오경환, 가톨릭교회의 노동사목, 사목1997.11, 91) 그것은 비단 방법론의 확장만이 아니라 교회의 자기 이해의 재고에 해당하는 본질적인 운동에 해당한다 말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교의 최대 관심사는 인간이다. 또 그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며 인간다운 행위는 노동이다. 따라서 인간을, 인간들의 세상을 가장 총체적이며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프리즘 역시 노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사목은 앞서 언급한대로 교회가 외부 세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만나는 창이며 세상의 복음화와 자기 쇄신이라는 양방향의 운동이 가장 활성화될 수 있는 길목이다.

 

 

5. 퇴색과 무기력

이 복음의 준거들이 밖으로는 영감을 불어넣고 안으로는 쇄신의 빛으로 제대로 발휘될 수 있기 위해서는 어쨌든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요구된다. 곧 현장과의 적극적인 대화이다. 결국 복음을 해석하고 그 내용을 구체적 언어로 옮기는 몫은 그 상황(context)에 놓인 교회와 신자 대중의 몫이기 때문이다. 구체적 언어는 다른 말로는 명시적 '선택'을 의미한다. 문제는 여기서 갈등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때문에 자주 보편을 이유로 관념적 언어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상황들을 회피하거나 중립 또는 양편 사이를 오가는 중재라는 유혹에 쉽게 노출되어왔다.

물론 그렇다고 최근의 한국교회가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에 가까운 완벽한 중립을 선언하거나 또는 타 종파에서 보이는 행동처럼 자본과 노동자들의 화해를 '중재'하는 몫을 자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거 근로기준법에 대한 의식조차 희박하던 상황에서 노동자 개인의 권리를 각성시키고 노동자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노동조합의 건설을 뒷받침하던 생생하고 적극적인 언어, 곧 스스로 가르쳐온 보조성의 원리에 부합하는 교회 고유의 언어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87년 이후 더 구체적으로 92년, 밖으로는 현실 사회주의의 해체와 안으로는 민간정부의 수립 이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은 물론 조합운동 역시 분화와 전문화의 길로 나아갔다. 자신의 고유영역이 축소되는 변화 속에 노동사목은 자연스레 이를 지원하는 외곽단체로 물러나거나 또는 새롭게 부상한 이주 노동자들과 같은 새로운 영역으로 관심을 옮겼다. 실제로 1977년 부평노동 사목을 시작으로 경향각지에 앞 다투어 생겨나던 노동사목은 92년 18개소까지 급증했지만 94년에는 2개소가 폐쇄되어 16개, 1997년은 13개소, 2015년 현재는 인천과 대구, 부산 3개소만 남았다. 이는 위에 언급한 상황들의 변화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수치다.

물론 이러한 진단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단편적이며 자기방어적 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퇴색과 무기력의 징후는 오래전에 감지되었다는 사실이다. 1997년 이미 오경환 신부는 가톨릭노동사목의 역사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노동사목의 새로운 방향의 모색을 요구했고,(오경환, 앞의 책, 96) 이러한 문제의식은 노동사목에 몸담고 있는 주체들 역시 오래전부터 동일하게 공유해온 내용이다. 어쨌든, 이주노동자 지원으로 확장되거나 노동자 개인과 가정의 안정을 위한 심리지원과 같은 활동에 필요한 전문역량의 강화, 문화사업의 다양화를 통한 노동자들과의 유대회복, 노동단체들이 미쳐 집중할 수 없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 등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노동사목의 노력들은 그동안에도 쉼 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한번 드리워진 퇴색과 무기력의 기운은 좀처럼 거치질 않는 상황이다. 노동사목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라면 이러한 변화들은 매우 당연한 일일 테지만 안타깝게도 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비참하고 가혹해졌다. 하지만 새로운 길이 열리는 자리는 바로 이 현실의 인식에 있다.

 

6. 도구가 목적을 배반하는 세상

개인적으로 2011년은 부산 영도를 뜨겁게 달군 희망버스의 해로 기억한다. 38미터 고공에서 304일을 정리해고 철회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던 한 여성 노동자를 구해야한다는 절박함이 각지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렇다 할 논평도 없이 첫 번째 희망버스를 관망하던 민주노총은 두 번째 희망버스에 돌연 합류했고 희망버스 운동을 가장 먼저 제안한 시인과 그의 동료들의 안내를 받으며 시민들과 섞여 집회에 참가했다. 그날 밤,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동원한 경찰력에 밀려 집회 대오가 흩어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대오를 안내하던 이동 스피커를 실은 시인의 트럭마저 경찰에게 압수당하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던 대오는 새벽동이 밝아오는 속도만큼 빠르게 흩어져갔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자리 잡은 그날의 이미지는 "시인의 제안으로 시작된 버스"이다. 버스를 몰고 내려간 것은 노동자들도, 민주노총도 아닌 시인이었다.

최장기 고공농성으로 기록될 줄 알았던 한진의 고공농성은 몇 년도 지나지 않아, 현재도 진행 중인 구미의 스타캐미칼의 기록으로 엎어졌다. 콜트콜텍의 9년, 쌍용의 7년, 모두 가늠할 수 없는 날수들을 기록 중이다. 그만큼 현실은 더욱 가혹해졌다는 것이다. 이 날수들은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할지 모르는 민주노총의 무기력이자 노동사목의 무기력이기도 하겠다. 아니, 이 가혹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지 도통 알 수 없는 노동자 자신과 교회의 무기력, 시대의 무기력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확성기를 실은 시인의 트럭이 없어지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던" 그날 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IMF 관리체제 이전 회자되던 "노동자 세력도 권력이다"라는 말은 옛말이 된지 오래이며 도래한 것은 노동 유연화라는 미명하의 저임금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범람이다. 곧 야만의 시대, 신자유주의의 시대의 도래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교회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장된 노동자들의 권익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활동 영역을 스스로 축소하고 힘을 빼던 시점과 맞물린다. 갈수록 더욱 최악으로 치닫는 현실 앞에 어느새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저항보다는 굴종과 비인간화의 길에 익숙해지길 택한 듯하다. 목적을 배반한 도구 앞에 인간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형편이다.

 

7. 시인과 교황

현재 비정규직의 규모는 공식적 통계(2014년 8월 현재 607만명) 이외에 사내하청과 특수 고용직 노동자들을 포함한다면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인 1000만을 육박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자 내의 불평등을 넘어 새로운 신분제도의 고착이다. 신분이 세습을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 나아가 최근 '중규직'이라는 새로운 신조어와 함께 논란의 한 가운데 있는 고용 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 개악의 핵심은 결국 목적인 인간의 도구로의 전락이다. 이 재앙의 상황에서 청년들은 구직을 위해 삶을 온전히 소진하고 있으며, 생존하고자 선택한 침묵은 부지불식간 이 착취의 새로운 구조, ‘실체 없는' 악의 현존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며 자신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만들어버린다.

흥미로운 것은 천주교 인천교구는 이 가혹한 현실을 이미 2000년 교구 시노드를 통해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노드 최종문서는 "노동사목/거룩한일터"라는 표제 하에 노동자들이 직면한 구제금융 이후의 현실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제1차 인천교구 대의원회의(시노드) 최종문서, 2001 천주교인천교구, 231-241) 문제는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실천 요강/개선 제안"의 제목 아래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며 제시된 해결책들 거의 대부분이 기술적이고 방법론적인 각론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최종문서에 제시된 대부분은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유효할 내용들임에는 분명하나 한 가지 누락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모든 각론들을 떠받칠 무엇, 바로 신자유주의 핵심을 꿰뚫고 이 황폐한 시대를 건널 통찰력이다.

앞서 희망버스 운동을 상술하며 "시인이 제안한 희망버스"라고 애써 강조한 이유는 비단 조직된 노동자들의 무기력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시인의 통찰력 때문이다. 그가 가장 위태롭게 바라본 위기는 바로 '인간'이다. 다시 말해 이 체제가 불러올 '비인간화'다. 도저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을 '사람'이 구하고자 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휩쓸려 나가는 것이 노동자들의 삶만이 아니라 이 시대, 곧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닌 자기 자신, 나아가 이 시대 전체가 이 체제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교회가 노동사목을 하나둘 폐쇄하면서 이만하면 됐다는 진단과 함께 노동 문제를 노동계에 국한된 문제로 밀어버린 사이, 노동자들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그 폐해는 노동자를 넘어 사회 모든 구성원의 삶을 위기에 빠트렸다. 교회의 의식에서 언제부턴가 '특수 영역' 쯤으로 인식되던 노동의 문제는 이제 노동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것이 되었다. 이 위기는 비단 개인의 경제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의식주, 생활 방식, 나아가 '가치체계의 함몰'로 이어졌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를 "인간학의 위기"라 지칭했다. 사실 그의 첫 권고문은 지금까지의 교회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어들과 화법으로 가득 차있다. 그는 경제와 노동문제를 다루며 대부분의 교회문헌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완곡 화법을 포기하고 매우 직설적이고 절박하게 이 상황들을 호소하고 있다. 경제생활, 곧 노동문제에 문헌이 할애한 물리적 분량 역시 그의 절박함을 가늠하게 한다. 통찰은 절박한 이가 갖는 특권이다. 그는 현대의 문제를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짚으면서도 이 위기를 건너가기 위해 무엇을 복원해야하는지 분명하고 단순하게 밝히고 있다. "새로운 마음가짐"이다. 매우 교회적인 수사이고 한편으로는 맥 빠지는 단순함이지만 이는 지금의 체제가 한사코 배제하고자 하는 가치이다. "연대성이라는 말은 (...) 어쩌다가 베푸는 자선 행위 이상의 것입니다. 이는 소수의 재화 독점을 극복하고 공동체 차원에서 모든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전제로 합니다." (복음의 기쁨, 188항) 교황이 거부한 것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등과 같은 공공재 또는 모든 공동체 이념의 배제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원칙들이다. 교황은 이 재앙의 체제를 견디고 건너는 해법은 공동체성의 회복, 모든 사람의 삶을 생각하는 '가치관의 복원'에 있다고 밝힌다. 다시 말해 이 시대의 위기는 비단 경제나 노동의 영역만이 아닌 가치체계 전반, 곧 인간 삶 전체의 황폐화, '비인간화'라는 사실을 통찰했고 그 해법 역시 인간 안에서 찾아야함을 밝힌 것이다. 때문에 교회는 이 인간들의 고통에 "온 힘을 다 기울여 그 부르짖음에 응답"(복음의 기쁨, 188항)해야 하는 것이다. 시인이 크레인 위 한 사람의 호소에 응답한 이유이기도 하다.

 

 

8. 복음으로의 복귀

사실 이러한 해법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에서 노동사목의 뿌리가 되었던 가톨릭노동청년회가 천착하던 일이다. 개인의 복음화, 곧 복음적 가치로 양성된 '투사'들은 자신의 삶의 주체인 동시에 사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할 훌륭한 자원들이다. 교황은 이 복음의 가치, "새로운 마음가짐" 이 모든 해법 이전에 전제되어야할 것이라 확신에 찬 어조로 반복한다.

"복음의 충만한 부요는 학자, 노동자, 기업가, 예술가와 모든 사람을 통합시킵니다."(복음의 기쁨, 238항) 헤지고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고 비인간화의 길에서 인간의 길로의 회귀는 복음적 가치로의 복귀로부터 시작된다고 확신한다. 지금의 상황은 다름 아닌 가치체계에 대한 투쟁임을 밝힌 것이다. 이 복음으로의 근원적인 복귀, 복음에 대한 보다 래디컬한 응답이 시대를 건널 해법인 것이다.

기존 가치체계의 전면적인 붕괴는 처음의 일이 아니다. 교회는 이미 근대라는 힘겨운 시대를 통과하며 자신의 소명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인간의 시대'앞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교회는 양차세계대전이라는 인간 절멸의 위기를 경험하고서야 인류 앞의 자신의 소임을 알아봤다. 그 결실이 바로 공감과 자신감에 찬 어조로 가득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다. 양차대전이 물리적 절멸이었다면 지금 우리 앞에 도래한 것은 의식의 절멸, 곧 인간을 규정하는 모든 가치들의 종말이며, 동시에 교회가 다시금 자신의 소임을 확인할 때이다. 이제 교회 스스로 이 싸움의 최전선에 호출되었음을 인식할 때다.

 

9. 전장에 임하려면

전장에 임해야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또 일어나야 할 몇 가지 것들을 짚어보자.

 

1) 사회복음화와 교회 쇄신의 동시성: 우선 자기 성찰이다. 위기에 대응하려면 누구든 자신을 뒤돌아보기 마련이다. 사회의 복음화를 위한 헌신은 교회의 자기쇄신을 불가피하게 한다. 자기가 행하지 않을 것을 남더러 행하라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음화에 대한 교회의 헌신은 불가피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복음을 내면화하도록 한다.

2013년 대한문에서 225일간 이어졌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을 위한 미사 때다. 누구는 그 미사로 무엇이 바뀌었는가 물었다. 또 더러는 교회 내 사업장들의 비정규직, 납득하기 어려운 해고, 저임금, 사목자들의 노동법에 대한 무지와 같은 비복음적 사정들을 외면한 채 거리에 나와 해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무슨 소용이냐고도 했다. 얼마나 자가당착적이고 자기모순이냐고도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모순과 갈등이 두려워 이대로 그만둘 수만은 없는 것이다. 모순은 성찰을 불러오고 갈등은 내면을 정화한다. 이 갈등의 순간이 복음으로 거듭나는 교회의 쇄신과 정화의 길임을 신뢰해야한다. 모순과 갈등은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되고 촉진되어야 한다. 교회의 자기 쇄신이라는 안으로의 운동은 사회복음화라는 밖으로의 운동과 함께 일어난다. 이 과정을 신뢰할 때 비로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가난한' 교회" 역시 가능하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노동사목이 주시해야할 두 깃발, 곧 자기쇄신과 사회복음화의 동시성은 교회 역시 신뢰해야할 상징이다.

노동사목은 이 모순과 갈등이 촉진되는 길목의 파수꾼이다. 물길이 막히면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이 길목을 활성화하는 몫이 곧 노동사목의 소임이다. 따라서 노동사목 스스로도 대규모 병원과 교육사업, 사회복지사업과 교회 내 사업장 등 확장일변도의 교회의 ‘괜찮은 이미지 재고'라는 현재의 소극적 자의식을 극복하고(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교회 전체의 언어로 삼도록 매진해야한다. 이를 위해 노동사목에 참여하는 주체들 모두 먼저 철저히 '복음으로 채워진' 자신감을 회복해야함은 물론이다. 

 

2) 말씀의 육화와 현장의 회복: 누누이 강조한 내용이지만 사회복음화는 복음의 자기 내면화, 곧 육화를 전제한다. 과거 노동자들 안에 현장교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노동사목의 꿈은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 말씀이 생동하기 위해서는 실로 육화해야하기 때문이다. 교황이 밝힌 오늘을 해쳐나가는 해법 중 가장 강조된 것 역시 말씀의 육화다. 그는 이를 "실재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그것은 말만 내세우는 세계, 이미지나 궤변의 세계, 천사 같은 순수주의, 공허한 미사여구,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에 대한 분명한 거부이다. 곧 교회가 현장감 있는 언어를 회복해야한다는 말이다. 현장감 있는 언어는 당연히 현장과의 대화를 통해 획득된다. "생각이 실재에서 동떨어지지 않으려면 그 둘 사이에 지속적인 대화가 있어야"(복음의 기쁨, 231항)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간혹, 아니 자주 보편을 담보하기위해, 또는 보편을 이유로 무색무취의 관념적인 언어를 구사해왔다. 하지만 사회복음화를 위해서는, 말씀이 실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렇게 살도록 초대하려면 말씀 역시 그들 사이에 몸소 육화해야한다. 무릇 참 종교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이나 ‘신비로운 무엇'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구원을 포함하는 실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1장이 장엄하게 선포한 세상의 인간들 사이의 애환 한가운데 동고동락하는 교회는 다름 아닌 이 현장 한가운데 육화한 말씀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러한 현장의 언어를 노동사목과 같은 ‘특수 영역'의 언어쯤이 아니라 고유의 보편적 언어로 삼아야한다. 그것은 단순히 문서와 강론 따위의 '어법'의 차원을 넘어 사람들 사이에 지어진 현장교회를 자신의 지체 중 하나로 긍정한다는 의미다. 그러기위해서는 노동사목과 같은 현장과 맞닿아있는 성원들의 소리를 우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작업에서 노동사목에게 주어진 몫은 현장교회를 튼실하게 세우는 일일 것이다. 낮은 곳 중의 낮은 곳, 후미진 곳 중의 가장 후미진 곳에 기꺼이 내려가 그 안에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선 공감할 줄 아는 삶을 의미한다. 함께 몸소 사는 것보다 더 큰 공명은 없기 때문이다. 노동사목의 이 공명의 능력이 더욱 커질수록 교회의 언어는 그만큼 생동감 있고 현장감 있는, 실로 육화된 말씀이 된다. 말은 존재를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현장의 말'은 듣는 이들만이 아니라 말하는 주체 역시 현장에 진심으로 공명, 곧 육화하게 한다. 언어는 실로 존재를 담기 마련이다.

이 모두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일에 투신할 일꾼들을 키워내야 한다. 물론 이 작업에 헌신할 재원들을 양성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주 양성문제를 거론할 때면 회자되는 신학교 내의 사회교리 교육의 강화나 일반 예비신자 교리와 견진 교리 등에 사회교리를 포함해야 한다거나, 활동가들에 대한 재정지원이 보강되어야한다 등의 지적처럼 단순히 기술적 문제의 차원이 아니다. 현장을 잃은 교육은 제아무리 사회교리일지라도 결국 추상적인 이해로 남을 공산이 크며, 몸으로 살아야하는 고된 작업에 헌신하고자 하는 열의가 물질로 환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론적 내용들은 필요한 조건들일 테지만 그 보다 우선되어야하는 것은 이 작업의 주체는 사목자 개인이 아니라 평신도와 함께하는 공동의 작업이라는 인식이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삶의 방식이 지니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평신도들의 양성은 필수적이다. 또한 평신도만큼 평신도를 공명할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2000년 인천교구 시노드의 본회의 이전 사목영역별 의제들의 초안을 가다듬는 시노드 준비위원회 자료집에 실린 지적은 여전히 날카롭다. 사목자들은 여타 종교인들이 그렇듯 공동체의 지도자이길 요구받는 동시에 공동체에 봉사하는 종이길 요구받는 딜레마를 지닌다는 것이다.(천주교인천교구 대의원회의 준비위원회 사목영역별 자료집 II, 10, 13) 때문에 공동의 작업은 늘 어려운 일이다. 사목자들에게 '육화'할 진심의 용기가 필요한 지점이며 더불어 이 작업에 참여하는 평신도들 역시 자신 스스로가 교회라는 자각과 자신감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노동사목의 뿌리였던 가톨릭노동청년회의 동반 사제들이 투사들을 양성하고 그들 스스로가 삶의 주체로, 교회로 우뚝 서길 희망했던 아름다운 전통과 같다. (양성의 문제는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할애된 지면의 한계도 있겠지만 결국 기술적 문제를 풀다보면 한이 없고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두서없이 나와 전체적인 그림을 놓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3) 총론과 각론: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지인이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노동사목의 미래에 대해 고민 중이라 답하니 돌아오는 답이 매섭다. 지인은 해고자들이 있는 곳마다 달려가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노동사목일 수 없으며 그것 역시 '응급조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박할 말이 없는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미사가방을 꾸려 현장의 사람들에게 달려가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며, 근본적인 길을 찾기 위해 전망을 가다듬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총론은 충실한 각론으로 빛을 발하고, 각론은 드높은 전망으로 고립을 피할 수 있다. 현장 없는 전망은 관념이며, 전망 없는 현장은 고통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의 조화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앞서 언급한데로 교회는 대조사회, 하느님의 도시를 미리 앞당겨 사는 존재이다. 때문에 주의나 사상이 제안하는 유토피아와 같이 특정한 설계도나 작업의 진척상황을 알 수 있는 밑그림은 처음부터 없다. 다만 다가올 종말의 교회를 전망하고 신뢰할 뿐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교황의 말을 빌리자면 "자리를 피하거나 떠나지 않고, 고향의 땅과 역사에 더 깊이 뿌리"내리면서도 "폭넓은 전망"(복음의 기쁨, 235항)을 지니는 것이다. 폭넓은 전망은 다른 말로 이 과정에 대한 신뢰다. 막연한 신뢰가 아니라 현장에 굳건히 뿌리내리면서도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주시하는 눈이다.

2014년 봄과 여름, 두 차례에 걸쳐 전국의 수도자들과 사제들이 밀양의 송전탑 건설 부지의 마을 주민들을 방문했다. 주민들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경찰들과의 충돌과 악다구니가 아니고서는 버틸 수 없는 폭력적 상황들에 모두 덧나고 상처투성이의 심신이었다. 그날 밤, 전쟁 같은 하루를 치룬 후 여전히 상기된 마을 주민들 사이를 뚫고 바이올린이 울렸다. 전쟁터의 바이올린. 이보다 생경한 장면은 없다. 모두 숨죽여 경청했다. 그날 밤 방금 전까지 격양되어있던, 헤지고 덧난 주민들 머리 위로 흐른 건 바이올린 선율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 가혹한 시간을 감내하는지, 무엇을 되찾아야하는지. 두 번째 방문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기저기 파헤쳐진 산자락 아래서 울린 떼제기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지라도 수도자들의 기도가 이어지는 내내 주민들 사이의 흐르던 고요와 침묵은 분명 평화라는 첫 꿈이었을 것이다.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전망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만이 현장의 고통에 함몰되거나 고립되지 않는다. 그래야 목적지를 다시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온통 '비인간'으로 둘러싸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기억하기위해 일그러진 육신의 유대인 프리모 레비가 애써 놀리던 펜대와 같다. 전장 한가운데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를 놓치지 않고, 수용소 골방의 펜대를 꼭 쥐어야 하는 것은 현장에 있는 이들만이 아니다. 모두를 비인간의 길로 내모는 이 황폐한 시대를 건너는 우리 모두가 그러해야하고 그 싸움의 최전선에 있는 노동사목에게는 더욱 그렇다.

전망은 시작에 대한 '기억'인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신뢰다. 곧 과정에 대한 신뢰다. 그것은 유보된 상급을 위해 인내할 시간들이 아니라 그 여정자체에 의미를 찾는 고된 작업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더디게 전진하는, 그래도 어쨌거나 도래할 내일에 대한 신뢰다. 

 

10. 노동사목의 미래, 솔직히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다. 여전히 한참을 말해도 모자랄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아래 온전히 구직을 위해 자신을 소진하는 청년들부터, 과거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었던 진통들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 늘 불안한 고용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친자본적이고 강경일변도의 노동정책만 내놓는 정부에 대한 견제, 부지불식 경영자가 되어버린 교회, 교회 지체들에 깊이 배인 영적 세속성 까지 여전히 한참을 되짚어도 모자랄 것 같은 이야기는 넘쳐난다. 방법론을 역시 다뤄야할 부분이 산적하다. 노동사목의 복원의 타당성 문제, 가장 시급한 활성가 양성의 문제, 센터와 파견소간의 관계문제, 이주노동사목과의 연계 문제, 진행 중인 사업들의 타당성 문제까지 문제를 삼자면 모두 문젯거리다.

모두를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족하나마 여기서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교회 안에서의 노동사목의 위상과 전망, 그리고 노동사목이 맺어야하는 복음과의 관계 정도를 이야기한 것으로 만족해야하겠다. 미처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은 앞으로 좀 더 현장에 충실한 언어로 풀이된 더욱 진지한 논의가 진척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신한다.

복음을 빼앗기지 맙시다 (복음의 기쁨 97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