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증언 (2014/9 순교특집)
초세기 그리스도인의 순교와 자기 신원: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증언 I
교회는 이중의 운동을 합니다. 과거와 미래, 위와 아래, 안과 밖이 서로 조우하고 이 양방향의 운동을 통해 거듭납니다. 돌이켜보면, 교회는 때때로 복음이라는 원기억(元記憶)의 샘물을 길어 다시금 자신의 길을 전망할 수 있었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처럼 기억은 미래를 머금고 과거는 내일을 전망하게 합니다. 고래의 삶이 내일의 삶을 약속합니다. 교회는 그렇게 자신의 발원지로 내려가 혼탁해진 몸을 씻어 걸어갈 길을 가늠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어제는 오늘을 위한 증언과 전망이 되어야합니다. 지난여름, 시복식을 통해 장엄하게 기념한 어제의 죽음들이 절멸의 위기까지 이르렀다 극적으로 생환한 한국교회의 '개선'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교회를 위한 생생한 증언이 되어야하는 까닭입니다. 무릇 참된 기념은 어제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의 빛으로 오늘을 비추어 어제를 '다시 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순교(martyria)는 극한의 언어로 고백한 '자기 신원'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고백은 점진적으로 완성됩니다. 예수가 교회를 명시적으로 창립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를 따르던 이들 역시 스스로를 처음부터 새로운 종교 집단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 역시 이 새로운 무리를 단지 헤세니파나 바리사이파와 같은 당대 유대교의 하위 그룹 중 하나로 이해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깊어갈수록 유대교와의 간극은 더욱 커져갔고 이윽고 동포들에게도, 점령자 로마인들에게도 위험한 존재들로 인식되게 됩니다. 자신들 역시 스스로를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집단으로 인식했음은 물론입니다. 새로운 믿음의 기원, 곧 교회의 탄생입니다. 주목할 것은 자의식을 갖추기까지 정치적으로는 제국의 질서와 충돌해야했고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의 권위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도전들입니다. 공인 이후, 박해시기의 '형식적' 배교자들의 복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은 다시금 '콘스탄티누스의 규범', 곧 '세상의 질서'와 병립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질서'를 깨달은 초세기인들의 명료한 자의식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지만 세상 것들을 사랑할 수 없는 자의식 말입니다.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초래된 위험은 그들이 자기 신원을 얻는 '유일한 경로'였던 것입니다. 실로 자기 신원이 짙어질수록 박해는 거세졌습니다. 복음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위험'을 동반하고, 위험은 '고백'을, '증언'을 낳습니다.
이 자기 신원은 세상의 모든 법 저 너머 '말씀'만을 추종하고, '전부'를 요구하는 복음의 요구에 복종합니다. 초세기 공동체가 직면한 박해는 위법과 범법으로 사회 질서를 훼손했다는 단순한 법률적 개념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심층적인인 기원을 지닙니다. 그것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sequela Christi) 요구되는 삶의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곧 세계관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복음이 요구하는 인간상은 동질성을 느끼는 집단에 합류할 때 요구되는 자격 요건과 같이 단편적으로 개별화되거나 범주화될 수 없는 총체적 인간, 즉 '전인적' 인간입니다. 몸과 마음, 남김 없는 '전부'를 요구합니다. 투신한 실존, 즉 복음이 요구하는 하느님의 법을 자신의 삶의 방식, 가치관으로 삼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말씀에 대한 추종과 복종은 '래디컬'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요구와 복음의 요구가 상충할 경우 그들이 주저 없이 박해를 감내한 이유요, 교회의 역사가 곧 박해의 역사였던 까닭입니다. 박해는 오히려 그들을 단련하고 정화했습니다. 순교(martyria)가 교회의 자기 신원의 가장 완전한 증언(martyria)이 되었던 연유입니다.
순교 종말 이후의 순교: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증언 II
박해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박해만 끝난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실한 보증인 순교 역시 종말을 맞았습니다. 구원의 확실한 통로를 상실한 중세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꽃피웁니다. 바로 수도 전통과 성인들의 유해 공경입니다. 순교 시대 이후의 사람들은 이미 '구원된' 이들의 흔적을 더듬어서라도 구원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성인들의 유해가 새롭게 발굴되고, 피로 물들었던 형장 위에 멋스런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성인들의 뼈 조각은 무수히 쪼개져 견고한 함과 제단의 초석으로 모셔졌습니다. 중세를 일컬어 가히 '유해의 시대'라 명명할만합니다. 하지만 인간사에는 늘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 유해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과 수요는 곧바로 '유해 시장' 형성으로 이어졌고 유해의 고가 거래와 모조품까지 난무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재가 아닌 도구가 주인 노릇을 한 꼴입니다. 뼛조각에 구원을 거는 어리석음처럼 말입니다.
순교의 종말 이후를 사는 것은 오늘의 한국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구가 실재를 가리고 무엇이 참 실재인지 몰라 두리번거리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양 한가지입니다(복음의 기쁨 194). 수세기 전, 이 땅의 선조들이 피로 증언했던 하느님 나라와 복음은 능멸과 죽음의 형장 위에 우뚝 세워진 '역전의 드라마' 같은 개선 기념물에 담겨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수도 없습니다. 진짜 기념은 '재생'이요 '재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억을 다시 사는 것이고, 어제를 '기억'하여 오늘에 '증언'하며, 다시 내일을 '예언'하는 일입니다. 초세기 교회 공동체와 이 땅의 순교자들의 삶만큼 이 '참 기념의 삶'을 웅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 곧 복음이라는 '태초의 어제'를 '기억'해냈고, 그를 따르고 흉내 내며 '오늘'에 그를 '증언'하였으며, 그가 꿈꾸던 세상을 그와 함께 희망하며 '내일'을 '예언'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순교는 물리적 시간의 종말이 아니라 완성된 하느님 나라를 미리 앞당기는 '종말 증언'인 것입니다. 때문에 용맹할 수 있었고, 죽는 순간에도 희망할 수 있었으며, 그 끝은 허무가 아닌 영원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종말론적 나라를 찾는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희망이 언제나 역사를 만들어"(복음의 기쁨 181)왔던 것입니다.
실제로 탐욕과 이기, 차별과 불평등으로 점철된 인류사에 신분고하, 남녀노소 구별 없이 서로 경청하고 위로하며 기도했던, 함께 일하고 소유하며 나눠 썼던, 이 '기적의 공동체'들은 인류 전체를 위한 아주 특별하고도 영롱한 페이지로 기억됩니다. 맥없이 추락만 하던 인류를 일대 고양시킨 이 가난한 이들이 곧 아브라함이 증언한 하느님의 진노를 거두어들인 최후의 의인 열 명(창세기 18:32)이고, 인간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무명(無名)은 따라서 의미 없음이 아니라 참 성명(聖名)인 것입니다. 무명 순교자들의 무명처럼 말입니다.
선조들의 순교 열망은 추한 것 가리고, 더러운 것 피하려는 절세(絶世)의 열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참혹하게 외소해진 인간을, 그 진창을 바라봤고, 아파했으며, 희망했습니다. 생에 대한 항구한 열망, 세상에 대한 끔찍한 사랑입니다. 그것은 예수라는 태초의 어제, 복음을 똑똑히 기억한 때문입니다. 철저한 복음 증언, 군말 없는(sine glossa) 말씀에 대한 복종의 열매요(복음의 기쁨 271), 지상에서의 예수의 삶을 남김없이 추종한 결과입니다. '기억함'은 기억의 주인공을 품는 것인 동시에 내 스스로 그의 기억이 되어 살아가는 것, 곧 그가 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모든 이와 삶을 나누고, 귀 기울이고, 도와주고, 기뻐하며, 함께 울어주는"(복음의 기쁨 269) 빛나는 모범 말입니다.
그들은 그들 구원의 유일한 마당이 이 세상임을 이미 알아챘던 것입니다. 마치 부활한 자신을 만나려면 생전의 그가 사랑했던 '갈릴래아', 곧 사람들 사이로, 세상 속으로 다시 찾아오라는 스승의 초대를 기억했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오늘의 순교 역시 이 '세상 한가운데서' 거듭 완성됩니다. 진창을 뚫고 피어난 순결한 꽃과 같은 어제의 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