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가 현실이 되기까지(세상 속의 교회 2025년 1-2월)
신기루가 현실이 되기까지
데모사이드(Democide). 평화연구자 루돌프 럼멜이 고안해 낸 신조어입니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 나치의 전체주의, 일제의 식민통치 등이 이에 해당하지만 ‘정치권력이 민간인들을 적으로 간주해 직간접적으로 제거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일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처단”, “척결”이라는 말들이 등장하는 계엄 포고문을 마주하며 맨 먼저 떠오른 단어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폭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믿은 이러한 시대착오적 발상을 권력자 개인의 도덕적 타락으로만 여길 순 없습니다. 사태 이후 생존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아우성치는 그림자들의 몰염치,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일극의 영화를 되찾겠다고 나선 트럼프라는 욕망의 귀환처럼 이 시대에 깊게 드리운 정신적 퇴행의 단면일 뿐입니다. 그간 우리는 풍요로워졌지만 더 졸렬해졌고 번듯해졌지만 더 비참해진 것입니다.
그날 밤 저 신조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라면, 이미지는 몇 해 전 미얀마에서 담아온 장면들이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묻혀 “잊힌 전쟁”이 되어버린 미얀마 내전은 올해로 5년째입니다. 군부 쿠데타(2021년 2월) 이후 5만 명이 죽었고 불타고 쫓겨나 난민으로 내몰린 이들도 300만입니다. 그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양곤에서 사목 중인 후배의 초대 덕분이었습니다. ‘전쟁 중’인 나라를 실제로 둘러볼 수 있었던 것 말고도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얀마로 돌아가 사제품을 받은 제자와도 재회했던 귀한 여정이었지만 한동안 잔상처럼 떠나지 않았던 것은 풍광이 아닌 그곳에서 목격한 전쟁의 상처들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곳에서도 고통이 가장 먼저 집어삼킨 것은 가장 취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내전과 전염병 속에 양곤에서만 하루에 600명에서 1,000명이 사망했는데 오랜만에 재회한 제자 신부도 그사이 어머니와 삼촌을 잃고 ‘고아’가 되어있었습니다. 영국이 물러난 자리에 일본이, 일본이 떠난 자리에 군부가 들어선 간난신고의 미얀마 역사는 곳곳에 들어선 검문소 덕에 갈지자로 차를 몰 수밖에 없는 도로와 닮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았던 것이 모두 고통만은 아니었습니다. 재난 르포르타주 작가 레베카 솔닛의 증언대로 그곳에도 분명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있었습니다.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델라이 인근에서 선교하던 수사님을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현지인 봉사자와 비포장 길을 얼마쯤 달렸을까. 갑자기 차를 세웠고 약속이라도 한 듯 길 건너편 한 무리의 여자들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봉사자는 주섬주섬 조수석에 두었던 보따리들과 주머니의 꼬깃한 지폐를 건넸습니다. 잠깐의 대화 후 다시 길을 재촉했습니다. 사정을 묻자, 반군과 정부군의 접경인 이 도로를 따라 난민 캠프가 줄지어 있고 방금 그들이 난민들이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아는 사이도 아닌데 자주 이 길을 지나며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가진 것을 나누다 보니 먼저 차를 알아보고 저리들 달려온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섬광처럼 잠시였지만 그때 나는 솔닛이 말한 “지옥 속에 세워지는 낙원”을 목격한 것입니다.
계엄 이후 빛과 어두움의 한바탕 싸움 같은 나날을 지나오며 미얀마에서 담아온 장면들이 더 자주 떠올랐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내전과 다름없는 상황에서도 그곳에서 목격한 저 ‘뒷문’과 ‘낙원’이 우리 안에서도 번득이고 있다는 확신 말입니다.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거리와 일상에서 보았던 섬광 같은 저 ‘뒷문’들과 ‘낙원’들이 점점이 모여 결국 아침을 열 것입니다. 남은 일이라면 신기루처럼 쉬이 증발할 이 찰나의 ‘빛’들을 단단히 땅에 붙들어 매어 현실로, 비로소 내일로 완성하는 일일 터입니다. 저기 동이 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