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lesia in mundo

시간을 거슬러(세상 속의 교회 2024년 3-4월)

바깥 주인장 2024. 3. 28. 14:56

시간을 거슬러

 

인간은 이렇게도 슬픈데, 주님! 바다가 너무 푸릅니다.” 일본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소설 침묵의 저자 엔도 슈사쿠를 기념하는 문학관 앞 비석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갯바위에 박힌 십자가에 묶여 바닷물이 밀려올 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희미하게 넘나들어야 했던 소설 속 순교자들의 마지막을 떠올립니다. 문학관이 자리한 소토메의 바다는 정말로 소설의 묘사처럼 푸르다 못해 먹먹하기까지 했습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그날도 바다는 500년 전 그때처럼 아무 뜻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며 똑같은 표정으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인간이 겪는 극한의 고통과 대조되는 바다의 저 무표정을 엔도는 무서운 무감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삶의 그 어떤 애환과 곡절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순환하는 자연의 순리, 그 무자비한 무심함이 이보다 더 잘 표현될 순 없겠다 싶었습니다.

 

바다 저 멀리 고토 열도와 히라도가 보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선교한 곳이자 기나긴 박해에도 은밀히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키고 살았던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들의 본향입니다. 물론 그곳 대다수는 금교령(1614) 이래 오직 구전된 교리와 기도문에 의지해 신앙 전통을 지켜오다 개항 후 프랑스 선교사들을 만나며(1865) 교회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전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활과 성탄 같은 절기와 세례와 성찬 등의 의례를 갖추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그리스도교라기보다는 또 다른 종교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 세기 입을 통해서만 전수된 라틴어 기도문은 시간을 거듭하며 변형되었고 기도를 뜻하던 라틴어(oratio)를 음차한 오라쇼라는 뜻 모른 채 읊조리는 일종의 주문’(呪文)으로 남아버린 식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탓이라면 구술 전승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자 드러내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던 시대의 가혹함일 뿐입니다.

 

하지만 히라도 군도 가운데 하나인 이키츠키의 향토 박물관에서 이들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접하며 떠오른 것은 문화사적 궁금증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조상들을 바다의 저 무자비한 무심함에도 끝내 신앙을 저버릴 수 없게 만든 힘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기도문과 기도문이 뜻하는 의미가 단단히 하나로 묶여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형식(기도문과 전례 등)과 담고자 했던 의미가 분명 그 형식 안에 여전히 옹골차게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미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그 내용에 실로 공감했음을 뜻합니다. 머리가 아닌 삶으로 말입니다. 물론 시간은 힘이 셉니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형식과 형식이 가리키던 내용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져 남는 것은 내용 빠진 형식이라는 껍데기이기 일쑤입니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을 그나마 메워줄 수 있던 사제마저 없던 그들에게는 더욱 그랬을 겁니다. 뜻 모른 채 드리던 기도문이 어느새 그 음송 자체에 어떤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주문이 되었듯 말입니다. 껍데기에만 집착하는 일종의 물신화(物神化)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정수가 오롯이 담긴 성주간입니다. 스승의 마지막 여정이 전례의 뼈대를 이룹니다. 하지만 전례가 담고자 했던 이 길의 의미, 스승의 삶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언제든 전례라는 앙상한 뼈대만 핥는 헛수고일 따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은 스승이 떠난 후 망각이라는 억센 힘을 거슬러 여정을 이어가야 하는 오늘의 교회에 언제나 선명한 가르침입니다. 다른 복음들이 소상히 묘사하는 성찬례를 요한만은 만찬 때의 일이다.”, 단 한 문장으로 가름하곤 몸을 숙여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에 집중합니다. 그러곤 에둘러감 없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보여준 것이다.” 이 한 구절을 끌어안는 깊이만큼 우리의 기도도 뜻 없는 주문이 아닌 옹골찬 고백일 수 있습니다. 바다의 저 무서운 무감동을 견디었던 그들처럼 단단할 수 있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소토메 엔도 슈사큐 문학관 회랑에서 바라본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