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lesia in mundo

정보가 고백이 되기까지(2023 Ecclesia in mundo 창간호)

바깥 주인장 2023. 3. 26. 00:42

정보가 고백이 되기까지

Ecclesia in mundo 창간호에 부쳐

 

연역과 귀납. 논리의 전개나 이해의 과정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연역은 어떤 전제로부터 출발합니다. 반면 귀납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경험들로부터 시작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입니다. 연역은 위에서 아래로, 귀납은 아래서 위로 흐릅니다. 매우 다른 방식이지만 둘은 상호보완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전제로부터 출발하는 연역은 일종의 기준이 있는 것으로 갈림길에서 선택을 돕고 실수를 최소화하며 걸어야 할 길을 비추어주기도 합니다. 귀납은 다양한 것들 속에서 공통된 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제 몸으로 부딪쳐가며 깨닫는것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연역은 안전하지만 자칫 밋밋할 수 있고, 귀납은 몸으로 부딪쳐 배운 것이라 깨닫고 나면 그 내용이 단단하고 옹골차지만 아집과 편협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둘은 언제나 그래서 서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신앙의 전수(傳受)를 전제합니다. 진리를 전해준 누군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진리는 진리를 전해주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진리일 테지만 전해 받는 이의 입장에선 아직 여물지 못한 정보에 불과합니다. 정보를 얻는 것과 전심으로 그것에 공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진리를 전수하는 이도 처음엔 비슷한 처지였을 겁입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전해준 것도 처음엔 정보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어떤 시간을 지나며 그것을 마침내 진리로 공감했을 겁니다. 아니 고백했을 것입니다. ‘정보고백이 되는 어떤 귀납의 시간을 분명 건너왔을 것입니다. 질문과 의혹, 갈등과 방황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그것을 진리로 고백하게 되었을 겁니다
역사를, 특별히 교회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 귀납의 시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무릇 개인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어떤 목적과 가치를 서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공동체, 그것을 진리로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탐구하는 일은 따라서 과거의 일을 그저 확인하고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탐구자가 맞이할 귀납의 시간을 가늠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진리로 전해졌는지를 제대로 이해해야 앞으로 맞이할 시간을 또 건너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연역과 귀납은 서로 돕습니다.

인천교회사연구소의 일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교회가 무엇을 전해 받고 무엇을 또 어떻게 깨닫고 고백하게 되었는지 그 귀납의 시간을 살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교회가 어떤 곳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할지를 가늠할 연역의 시금석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받아 안고 고백하는 사람에겐 본디 이중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하나는 진리를 보존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진리를 실로 오늘에, 모든 이에게 진리일 수 있도록 생동하도록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진리의 담지자(擔持子)이자 활성가(活性家)로도 초대된 셈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할 일은 따라서 진리를 그저 보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의 고통과 절망, 기대와 희망 속에서 진리를 새롭게 해석하고, 삶으로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격월로 발행될 이 작은 소식지도 미력하나마 작은 보탬이 되길 희망합니다.